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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극한지 심해 속에서도 끄떡없는 고급철강 ‘콰르르 쾅쾅’

등록 2012-07-19 10:50

해양플랜트·송유관에 쓰이는
부식에 강한 특수철강
전세계 수요 3500만t 달하지만
생산 가능 회사는 두어곳뿐
기술력만으로 브랜드파워 과시
GE·지멘스·셸과
해상풍력·해양플랜트 협약
‘콰르르 쾅쾅쾅.’ 고압의 물이 1000℃ 이상으로 시뻘겋게 달궈진 슬래브(철강제품을 만들기 전 쇳물을 굳힌 직사각형 반제품) 위에 쏟아졌다. 슬래브 위에서 수증기가 일어나며, 공장 안에 번개가 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물을 이용해 순식간에 불순물을 씻어내는 겁니다.” 포스코 후판부 기술개발팀 김대현씨는 땀을 뻘뻘 흘리며 설명했다. 슬래브는 대형 압연기 속에서 엄청난 힘의 롤러에 의해 길게 펴지면서 형태를 갖춰갔다. 김씨는 “일반강은 압연기에서 온도 제어를 하지 않지만, 고급강은 제어를 해야 합니다. 공정에 더 신경을 써야 발주처에서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죠”라고 했다.

지난 11일 포스코의 차세대 먹거리 ‘에너지 강재’를 생산하는 포항 2후판공장을 찾았다. 장마로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 40~50m짜리 철판이 후끈한 열기를 내뿜으며 라인을 따라 생산되고 있었다. 납작하게 펴져서 모두 엇비슷해 보였지만, 김씨는 “발주처에서 크기나 강도 등을 모두 지정한 제품”이라며 “러시아나 북해의 극한지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강재도 모두 여기서 생산한다”고 말했다. 쇳물의 불순물을 없앤 뒤 특수한 성분을 넣는 제강·연주·압연 과정을 거친 두께 6㎜ 이상의 후판은 훨씬 단단하면서도 무게는 가벼운 에너지 강재가 된다.

포스코가 에너지 강재 개발 및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철강시장의 불황을 이겨내고, 다음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서다. 이날 포스코 본사에서 만난 정철규 상무는 “포스코는 극한지 에너지플랜트에서 쓰일, 영하 60℃도 견딜 수 있는 철강재나 파도가 심한 바다에서도 깨지지 않는 두꺼운 200㎜ 후판을 개발중”이라며 자신감에 차 있었다. 올 연말까진 180㎜ 후판 개발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예상했다.

에너지 강재는 석유를 캐는 시추선 등의 해양플랜트나 송유관 시설 등을 만들 때 쓰이는 고급 철강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3500만t에 달한다. 고유가 시대와 맞물려 원유·가스 개발이 늘고 있어 2020년엔 6300만t까지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채굴하기 쉬운 석유나 가스 등은 이미 바닥이 난 상태여서, 황 성분이 많이 든 석유 등을 수송·저장할 수 있는 철강제품 수요가 늘고 있다. 세계적인 석유회사들이 심해나 시베리아 등 극한지의 원유를 시추·수송하면서 부식에 강한 고강도의 철강 사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철강을 만들 수 있는 제철소도 일본의 신일본제철이나 독일의 딜링거 제철소 등 소수에 불과해 가격도 일반 철강재에 견줘 높게 형성돼 있다. 포스코가 성공적으로 진입한다면 ‘황금시장’에서 큰 이익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포스코는 2020년에 800만t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그동안 다른 강재 수요도 충당하기 어려워 에너지 강재까지 관심을 가지기 힘들었지만, 중국의 철강 공급량이 수요를 웃돌면서 2008년부터 에너지 강재처럼 신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커졌다”고 했다. 정 상무는 또 “특수 철판을 잘 만들 수 있는지 여부가 기술력의 척도”라며 “물량이 얼마 되지 않더라도 포스코의 브랜드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더 투자해야 할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포스코 연구원들은 이를 위해 5~10년 뒤를 내다보고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 에너지 플랜트에 들어가는 강재의 품질조건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불황기라도 미리 전단계 제품을 개발해 놓지 않으면 발주에 응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발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정 상무는 처음에 고급강을 개발할 땐 평평해야 할 철판이 쭈글쭈글하게 나와 당황스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그는 “압연기 사이에 시제품이 끼면, 기계에서 뜨거운 철판을 떼어내느라 물로 식히고 용접기로 절단하고 ‘생쇼’를 했다”고 말했다. 300t 물량을 한꺼번에 못 쓰게 되는 등 철강제품을 상업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시행착오도 여러번 겪었다.

이런 노력을 거쳐 포스코는 현재 에너지 강재의 미래를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지난 5월31일엔 미국의 에너지·발전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과 에너지 강재 및 인프라 분야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공동연구를 통해 에너지 플랜트용 강재를 개발하는 등 제너럴일렉트릭과 협력을 넓혀갈 계획이다. 독일의 지멘스와도 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의 강재 및 신소재 공급협력을 맺었다. 앞서 지난해엔 세계적인 석유회사 셸과 모든 해양플랜트 프로젝트에 각종 해양구조용 후판을 장기공급하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30년 동안 포스코에서 연구개발 등을 맡아온 정 상무는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울수록 미래 먹거리를 준비해야 한다”며 “잘될 때 준비하면 늦는다”고 했다. 그는 “포스코가 에너지 강재를 발 빠르게 개발해 공급하면, 해양 플랜트 수주에 집중하고 있는 한국 조선사들도 건조가 쉬워지는 등 함께 윈윈하는 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항/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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