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28일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 성장을 잘 이룩했다. 하지만 성과가 가져온 사회적 모순(압축 성장에 따른 부의 불공정한 배분)이 발동했기 때문에 비명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정치권의 가장 큰 화두인 ‘경제민주화’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의 몰락 역시 경제민주화라는 과제를 간과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김 전 위원은 이날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의 대선 경선 캠프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은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2 중소기업 리더스 포럼’에서 ‘경제민주화가 시장경제에 배치되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그는 이 자리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여지니까 자율 경제를 해치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며 “1970년대 중반부터 ‘이런 식(압축성장)의 경제 발전을 하다가는 언젠가는 경제 세력이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꼴이 될거다’라고 지적해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60년대 경제적 후진국에서 빨리 선진국으로 변모하기 위해 정부의 기획 아래 자원을 소수 몇사람에게 인위적으로 배분했다”며 “정치하는 사람은 경제 세력이 언지나 정치 세력 밑에서 종속될 줄 알았다. 시대와 의식이 변하고 경제사회 구조가 변하고 있었는데 이를 수용하지 못하면 자체 모순 떄문에 정권은 안정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프랑스 혁명의 일화를 사례로 들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자초한 왕 루이 16세가 단두대에 올라가면서 한 혼잣말을 집행관이 후세에 전한 이야기가 있다. ‘내가 이런 사태가 올거라는 것을 10년 전부터 어렴풋이 짐작했는데 왜 아무 일도 안해 여기 왔는지 모르겠다.’” 모순이 닥쳐와도 자기 부정을 하면 결국 파경에 이른다는 점을 빗댄 것이다.
그는 “전국민의 45%가 자신을 하층민”으로 여기는 통계를 소개하며 “한국 경제의 위기는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국민의 역동성이 시드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원인을 ‘탐욕’이라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본적인 습성에서 찾았다. “시장의 효율성은 남보다 더 많이 가지겠다는 본능에서 비롯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강자만 남고 약자는 도태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동 사회는 강자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시장이 잘 작동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는 “큰 경제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법을 지키는 것’”이라며 “법 밖에서 행동을 할 수 있는 권한이 나에게 있어야 된다는 것이 그 사람들의 자세인데, 이 안에서는 어떤 경제주체도 살아날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경제세력이 언론, 법조, 여론을 일으키는 지식인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 그들이 관장하면 보수적인 판사들이 뭐라고 판단하겠느냐.”
경제민주화 달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로 김 전 위원은 “경제 운영을 민주적으로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제도적 장치”를 꼽았다. 예로 그는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를 들었다. “어떤 의원이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입법하자고 했는데 국민연금이 투자한 주식의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법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당연한 권리다. 주주가 소유한 만큼 회사 운영에 간여하른 것을 막는 것은 시장 운영에 배치된다.” 그밖에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 제시하지 않았지만 “가지고 있는 현행 룰을 조금만 변화시켜 적용해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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