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오늘은 문패에 걸린 ‘친절한 기자’가 아니라 ‘용감한 기자’로 나섰습니다. 솔직, 용감한 게 불편할 수 있어서 잠시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어릴 적 귀가 닳도록 들었던 “정직이 최선”이라는 격언을 방패 삼았습니다.
이번 주제는 유류세 인하 논쟁입니다. 유류세가 뭔지부터 시작해볼까요. 휘발유, 경유, 등유 등 기름에 붙는 세금을 말합니다. 얼마나 되겠냐라고 무시할 게 아닙니다. 어림잡아 기름값의 절반이나 됩니다. 휘발유값이 ℓ당 2000원이면 1000원이 세금인 셈입니다.
유류세를 낮추면 자연히 단 몇푼이라도 기름값이 떨어지겠죠. 세금 깎아준다는데 싫어할 사람도 없겠죠. 유류세 인하는 기름을 쓰는 모든 소비자에게 이득인 게임처럼 보입니다. 당장 저와 여러분의 지갑에서 나가는 기름값도 줄어들겠죠.
이런 모두를 위한 유류세 인하가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경제부 후배 이아무개 기자한테 물어봤습니다. 저랑 생각이 비슷했습니다. 또다른 최아무개 기자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어쨌든 유류세 인하를 찬성하는 쪽에 서 있지 않은 것입니다.
유류세를 좀더 살펴보고, 저와 동료들이 왜 세금 인하에 회의적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름에 붙는 세금은 무려 8가지나 됩니다. 교통에너지환경세, 교육세, 지방주행세, 개발소비세, 판매부과금, 관세, 수입부과금 그리고 부가세까지. 2008년 5월 휘발유값은 ℓ당 1803원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액수가 가장 큰 교통에너지환경세(472원), 부가세(163원), 지방주행세(127원), 교육세(70원) 등의 비중이 전체 가격의 46.3%(834원)를 차지했습니다. 여기엔 수입 부과금 16원, 관세 3%, 개별소비세(교통세의 15%), 판매부과금이 빠진 수치입니다.
휘발유는 자동차가 귀한 시절 한때 사치성 물품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1950년 사치성 물품과 함께 기름에 물품세가 부과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7년 기름에 부가세 및 특별소비세가 붙기 시작하더니 이후 교통세, 교육세, 지방주행세 등의 세금이 하나둘씩 추가됐습니다. 나라에서 세금을 더 걷으려 할 때마다 만만한 동네북 신세였습니다.
오르기만 하던 유류세는 2008년 한시적으로 인하됐습니다. 국제유가가 당시 배럴당 147달러까지 치솟던 시절이었습니다. 정부는 서민들의 유류비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2008년 3~12월 유류세를 10% 낮췄습니다. 가격안정 등을 위해서는 30%까지 세율을 탄력적으로 낮출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다시 넘어서면서 유류세 인하 주장이 거세졌습니다. 산업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지식경제부는 찬성하고,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는 반대하는 이상한 모양새였습니다. 재정부는 국제유가가 130달러를 닷새 동안 넘어서면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겠다고 합니다. 27일 현재 두바이유는 115달러 안팎에서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류세를 낮춘다고 해도 기름값이 그만큼 내리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은 지난 1월 기준으로 유류세를 10% 낮추면 휘발유 가격은 4.5% 낮아진다고 분석했습니다. ℓ당 1955원(1월 기준)의 휘발유값이 89원가량 떨어집니다. 중간에 정유사와 주유소 등이 세금 인하의 적지 않은 부분을 유통 마진으로 흡수하기 때문에 가격 인하가 제한적인 것입니다.
세금 인하의 효과도 소득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6.3배나 크다고 합니다. 부자일수록 기름을 많이 쓰기 때문에 세금 인하 혜택 또한 더 크게 봅니다. 거기다가 국제유가가 유류세 인하 이후에도 계속 올라 휘발유 가격이 뛰면 사람들은 세금 인하 효과를 더는 체감할 수 없게 됩니다.
대신 만만치 않은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2008년에도 유류세를 낮춰 약 2조원 정도의 세금이 덜 걷혔습니다.
우리나라만 유독 기름값에 붙는 세금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유류세 비중은 기름값의 53%입니다. 길게 보면 유류세 인하가 자칫 기름 소비를 부추길 수도 있겠죠. 안 그래도 지난 3월 우리나라 사람들의 휘발유 소비량은 지난해보다 4.11% 늘었습니다. 그 사이 가격이 4.6% 올랐는데도 말입니다.
유류세 인하에 비판적인, 그래서 편파적인 주장이었나요? 그렇게 읽힐까봐 오늘은 용감한 기자를 자처했습니다.
물론 기름값이 더 올라 서민층의 부담이 한층 가중된다면 유류세를 낮춰야겠죠. 하지만 솔직히 기름값이 얼마가 될 때 세금을 낮춰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당장이라도 생계 때문에 차량을 쓰는 분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유류비 지원은 꼭 필요하겠죠.
류이근 경제부 정책팀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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