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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다국적기업 줄소송에 낭패…“폐기가 최선”

등록 2012-04-06 08:27

인도 정부 ‘ISD’ 폐기 추진
영 통신회사, 조세 정책 바꾸자 소송 으름장
국영석탄회사도 패소…“부정적 평판 감수”
인도 정부가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를 폐기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투자협정 위반을 내세워 외국 기업이 정부의 공공정책을 위협할 수 있음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월부터 통신, 석탄 업계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은 인도 정부의 정책을 향해 잇따라 칼날을 세워 공격해왔다. 영국 통신업체인 ‘보다폰’의 경우, 인도 정부가 자본이득세 1200억루피(약 2660억원)를 부과하자 투자협정 위반이라며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조처를 단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다른 이동통신업체인 노르웨이 ‘텔레노르’ 러시아 ‘시스테마’도 법적 다툼을 시작했고 인도의 국영석탄회사도 최근 오스트레일리아 기업이 제기한 국제중재에서 패소했다.

인도 통상전문가인 비스와지트 다르는 인도 최대의 영어 일간지인 <인디언 익스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국제중재가 남용될 소지가 있어 그 위험을 오랫동안 지적해왔다”며 “부정적 평판을 감수하더라도 정부가 투자와 관련한 국제중재를 거부하는 게 정당하다”고 말했다. 결국 인도 정부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포함한 투자협정을 재협상해 외국 기업도 각국의 국내 법원에만 소송을 제기하도록 개정하기로 했다.

최근 국제중재 사건이 급증하면서 인도처럼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반대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2004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제외한 데 이어 지난해 4월에는 ‘신통상정책’을 발표하면서 이 제도를 앞으로도 채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브라질 의회도 입법 주권을 제한하는 제도라며 투자협정의 비준 동의를 줄곧 거부해왔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엔 흑인과 백인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한 흑인우대 정책이 다국적 기업의 공격을 받자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다수의 국민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라며 “우리나라도 국제적 연대를 통해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폐기하는 방안을 논의할 때”라고 말했다. 거스 밴 하튼 캐나다 요크대 교수(오스굿 홀 로스쿨)도 “폐기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일본 도쿄와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각각 열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국제심포지엄에서도 미국과 뉴질랜드 등에서 온 변호사와 통상법 전문가들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재협상하기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꾸렸지만 폐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9일부터 국민 의견도 인터넷으로 받지만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 유치, 국내 기업의 외국 투자 보호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제도”라며 “사법주권, 정책주권을 침해한다는 데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우리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인도 정부도 이번에 이 제도를 폐기하기 위한 재협상을 우리나라에 요구할 것으로 알려져 우리나라의 향후 대응이 달라질지 주목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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