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직원들이 14일 낮 인천광역시 중구 운서동 대한항공 화물터미널에서 미국발 화물기에 실려온 수입물품들을 하역하고 있다. 인천공항/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미FTA, 우리 생활 어떻게 달라질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본질은 단순히 관세를 낮추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에 대한 자유화, 그것도 후퇴 불가능한 제도와 법령의 자유화에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정석윤 변호사의 말이다. 한-미 협정상 서비스와 투자 분야에 ‘래칫조항’(역진방지·ratchet)을 도입해 한번 개방폭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고치면 이를 다시 되돌릴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한-미 협정은 우리나라 법률 1226건(2월 말 기준) 가운데 23건을 고쳐야 할 만큼 커다란 제도적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기획재정부는 “제도를 선진화해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 변호사는 “공공정책의 자율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지적재산권 강화 지적재산권은 변화가 가장 큰 분야다. 저작권법, 특허법, 실용신안법, 디자인보호법, 상표법 등 무려 5개의 관련 법률과 5개의 시행령이 개정됐다. 소리와 냄새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상표로 등록할 수 있게 됐고, 저작권 보호기간은 50년에서 70년으로 늘어났다.
정부는 “우리 기업과 발명가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한층 더 강화된 보호를 받게 된다”고 밝혔다. 또한 국내 저작권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남희섭 변리사는 “시민들의 제품과 서비스, 기술 사용에 대한 제약을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저작권을 침해한 인터넷 사이트의 경우 법원의 판결 없이도 행정기관이 사이트를 폐쇄할 수 있게 된다. 또 행정기관이 권리 침해를 주장하는 쪽의 주장만으로도 판매금지 가처분 등의 조처를 취할 수 있다.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로 시민들 삶 제약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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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새 보험상품 못내놔 공공서비스 제약 ■ 조세체계 개편 한-미 협정 발효에 따라 관세가 낮아질 뿐만 아니라 자동차세도 줄어든다. 승용차 자동차세 세율이 기존 ㏄당 80~220원에서 80~200원으로 낮아진다. 개별소비세도 2000㏄를 초과할 경우 기존 10%에서 3년 뒤에 5%까지 낮아진다. 승용차 구입자들은 세금 인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2000㏄가 넘는 5000만원짜리 미국산 자동차를 사면 관세와 소비세 인하로 종전보다 약 400만원 낮은 가격에 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는 자동차세 체계 개편으로 5년 동안 3조8189억원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나아가 조세 정책의 자율권을 침해받을 수도 있다. 미국 카길사는 멕시코가 감미료를 사용한 탄산음료에 대해 20%의 소비세를 부과하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위반이라며 국제중재기관에 제소해, 2009년 승소했다.
■ 보건의료 정책 한-미 협정으로 건강보험 약값 재심 절차가 사실상 ‘민영화’된다는 우려가 있다. 의약품 가격 산정 등에 대한 재심을 공무원이 배제된 독립적 민간 기구가 맡도록 해놨다. 이 때문에 의료 정책의 공공성이 위축될 것이란 목소리가 적지 않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약값 결정 과정을 사실상 민영화하는 조처로 정부의 결정에 미국 제약회사나 의료기기 업체가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은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약값도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약사법 개정으로 국내 제약업체가 복제(제네릭) 의약품을 시판하기 위해서는 미국 쪽 특허권자에게 우선 통보해야 하는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도입된다. 특허권자가 특허 침해를 주장하면 일정 기간 허가가 정지돼, 값싼 복제약 시판이 늦어지게 된다. 정부는 이 제도의 시행을 3년 유예한 만큼 국내 제약사들이 경쟁력을 확보할 시간을 벌었다는 입장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국내 제약사의 경쟁력 강화에 보탬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공공 서비스 및 정책 지난 1월 지식경제부는 우체국보험의 가입 한도를 50% 인상하려다가 철회했다. 한-미 협정에 위반된다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의 반발 때문이었다. 한-미 협정이 정부의 공공서비스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이밖에도 ‘우체국 예금·보험법’ 개정에 따라 앞으로 우체국은 변액생명보험 등 새로운 보험을 내놓을 수 없게 됐다. 정부는 민영화 확대를 통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넓어졌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영리 추구로부터 자유로운 공공서비스가 제약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특히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 등 중소상공인 보호 정책은 ‘시장 접근 제한’이란 이유로 언제든지 분쟁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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