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합의’ 의약품 가격 산정 절차까지 뒤엎을 판
암참 “검토결과 약값 반영” 미국, 실무협의서 같은 뜻
FTA 발효 땐 다국적기업 ‘ISD 청구’ 입김 거세질듯
암참 “검토결과 약값 반영” 미국, 실무협의서 같은 뜻
FTA 발효 땐 다국적기업 ‘ISD 청구’ 입김 거세질듯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의약품 가격을 산정할 때 공무원이 배제된 ‘독립적 검토 절차’를 도입하도록 돼 있다. 독립적 검토 절차를 통해 다국적 제약사들이 우리 정부의 보험약가를 번복할 것이라고 보건의료단체에서는 우려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2일 이 절차의 신설을 담은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독립적 검토 절차가 약값을 고칠 결정권은 없고, 심평원이 검토 결과를 참고해 약값을 재평가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가 최근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암참은 “(심평원이) 검토 결과 보고서에 구속되지 않으면 독립적 검토 절차가 명목상으로만 존재할 뿐 실효성이 없게 될 수 있다”며 “검토 결과가 최종 결과에 반드시 반영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복지부는 “앞서 독립적 검토 절차를 도입한 오스트레일리아(호주)도 최종 결과를 참고자료로만 활용한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암참은 뜻을 굽히지 않을 태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이행 준비를 점검하는 두 나라의 실무협의에서도 동일한 문제를 제기하며 밀어붙이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발효를 앞두고 암참이 우리나라의 법령과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상압력 전초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의 위세를 업은데다 협정이 발효되면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할 권한도 보장받기 때문이다.
1953년에 설립된 암참은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을 위한 이익단체다. 이 단체의 회원은 2000명을 웃돌아 미국계 기업은 모두 들어 있다고 봐도 된다. 게다가 삼성전자 같은 국내 업체나 유럽계 기업도 500여개나 섞여 있다.
암참의 활동 목표는 한·미 두 나라 사이의 투자 및 무역 증진이며,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기업 환경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는다. 각 회원사는 항공 및 국방, 건설, 자본시장, 인터넷 등 30여개 분과위원회로 나뉘어 우리 제도적 관행적 장벽을 면밀히 검토해 매년 3~4월에 ‘연례 무역보고서’를 낸다. 이를 토대로 미국 쪽에서는 기업의 활동을 제약하는 비관세 장벽을 없애라고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게다가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암참 회원사(기업)들은 투자자-국가 소송제라는 또다른 ‘무기’를 얻는다. 우리 정부의 정책으로 피해를 입을 경우 국제중재를 제기해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게 된다. 특히 다국적 기업의 경우, 상대국 정부를 길들이기 위해 승소 가능성이 낮은데도 중재를 신청하는 경향이 있다고 법무부는 지적한다. 정당한 정책인데도 중재에 회부되면 수백만달러의 중재·법률 비용을 국가예산으로 부담해야 하고, 그 정책을 수립한 정부 관료는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서 정부의 공공정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이미 암참 등 다국적 기업의 영향력에 휘청거리고 있다. 예를 들어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11월11일 우체국보험의 가입 한도를 현재 40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높이는 우체국 예금보험법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가 암참이 자유무역협정 위반이라고 반대 의견을 제출하자 철회했다. 또 지난해 7월에는 국토해양부가 4대강 공사로 공급 과잉에 이른 굴삭기(굴착기)의 신규 등록을 제한하는 건설기계 수급조절 정책 확대를 추진하다가 중단했다. 미국의 캐터필러와 스웨덴의 볼보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이라고 문제를 제기했고 외교통상부가 “통상분쟁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자제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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