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취리히 도심에 있는 프라이탁 플래그쉽 매장은 쓰던 컨테이너를 쌓아올려 만들어낸 신개념 공간으로, 트럭 덮개를 재활용한 제품과 함께 이 회사의 친환경적인 디자인과 그 가치를 잘 드러내고 있다. 취리히 도시의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프라이탁 제공
‘디자인 프라이스 스위스 2011’ 가보니
공장 개조해 전시…올해가 11번째 행사
“디자인은 결과물 아닌 가치 담는 과정”
폐품으로 가방 만드는 ‘프라이탁’ 대상
공장 개조해 전시…올해가 11번째 행사
“디자인은 결과물 아닌 가치 담는 과정”
폐품으로 가방 만드는 ‘프라이탁’ 대상
기능과 조형미가 중시되던 제품 디자인에 특별한 가치와 스토리를 담으려는 디자인 업계의 시도가 눈길을 끌고 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기능주의 디자인 흐름이 기술 평준화와 형태적 차별성 감소, 주체적 소비자층의 등장에 따라 새로운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디자인은 결과물이 아니라, 지향하는 가치를 향한 과정이자 절차입니다.” 지난 15일(현지시각) 스위스의 대표적 디자인 공모전인 ‘디자인 프라이스 스위스 2011’의 책임큐레이터 미헬 후에터는 스위스 디자인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디자인 프라이스가 열린 장소도 사연을 담고 있다. 2년마다 열려 올해로 11회째를 맞은 이 전시회는 대도시가 아닌 수도 베른 주변의 작은 도시 랑엔탈의 낡은 창고에서 열리고 있다. 스위스의 명품카펫인 룩스툴의 옛날 공장을 전시장으로 개조해, 디자인의 역사성을 담아낸 것이다.
‘지속 가능성’이 강조된 올해 전시회에선 취리히에 본사를 둔 가방업체 ‘프라이탁(Freitag)’이 대상을 받았다. 전시장 곳곳에 프라이탁 가방과 광고 캠페인이 전시돼 있지만, 그 자체로는 눈길을 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제품 디자인이 담고 있는 가치와 스토리는 왜 이 가방이 유럽과 일본의 젊은층에서 선풍적 인기를 불러일으키는 명품이 됐는지를 설명해준다.
프라이탁은 폐품을 이용해 만든 독특한 가방으로, 취리히 출신의 마커스 프라이탁과 다니엘 프라이탁 형제가 1993년부터 버려지는 트럭용 방수덮개를 재활용해 만든 ‘역발상 제품’이다. 자전거를 많이 타는 취리히에서 비가 와도 젖지 않으면서 튼튼한 가방이 필요했고, 형제는 트럭의 광고용 방수천막을 이용해 메신저백 만들기에 나섰다. 어깨끈과 모서리에는 자동차 안전벨트와 자전거 바퀴튜브를 재활용했다. 내구성과 방수성이 탁월한 트럭덮개 천을 사용해 기능성이 뛰어난 데다, 광고가 인쇄된 재활용 천막을 오려서 만드는 공정으로 인해 모든 제품의 디자인이 다르다.
친환경 제품이라는 점과 세계에 하나뿐인 디자인이라는 특성은 재활용 비닐가방처럼 볼품없어 보이면서도 값비싼 이 제품에 열광하는 마니아 소비자층을 만들어냈다. 후에터는 “프라이탁은 메신저백을 광고할 때 신문배달 가방에서 비롯한 특성을 알리기 위해, 신문 제작과 배달 과정을 일련의 캠페인으로 알렸다”며 “신문에 기고를 해서 사연을 모으고 활자 조판을 거쳐 인쇄된 신문을 메신저백에 담아 배달하는 사연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시장(마켓)부문상을 받은 ‘시니어디자인팩토리’는 세대간 격차가 커지는 현실에서 디자인의 사회적 필요성을 다뤄 주목받았다. 젊은이는 할머니로부터 뜨개질을 배우고, 할아버지는 젊은이로부터 컴퓨터를 익힌다. 신구 세대는 전통 도구를 이용해 함께 빵을 만든다. 대량생산에 싫증나 정성이 깃든 제품을 찾는 수요에 맞춰, 신구 세대의 노하우가 교환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취리히의 공예품 작업장, 매장, 레스토랑의 광고물이다.
후에터는 “아버지는 시계산업에 종사하다 값싼 일본 전자시계가 몰려온 바람에 실직했다”며 “근래의 스위스 명품시계에 대한 인기가 다시 높아져 산업이 부흥하는 것은 디자인의 가치를 알려준다”고 말했다. 그는 “스위스 시계는 더이상 정확성이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며 “스위스 시계는 장인에 의해 전통적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는 스토리와 이미지, 꿈을 팔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보다 디자인에 담긴 스토리와 가치를 중시하는 스위스의 디자인 프라이스 전시회는 내년 봄 20개국 순회전시에 나서며, 서울이 첫 행선지다.
랑엔탈(스위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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