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USTR대표와 공동위 구성
견제할 수단조차 없는 상태
견제할 수단조차 없는 상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정부조직법상 대외 교섭을 담당하는 기관이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통상교섭본부장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공동위원회를 구성하는데, 이 위원회에서는 △협정의 이행을 감독하고 △협정을 수정하며 △협정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 협정과 관련해서는 양국의 통상관료가 행정·입법·사법 전반에 걸쳐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정작 위원회의 결정을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어서 견제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과정에서부터 우리 통상당국은 월권을 행사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헌법 제59조는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며 조세체계를 고칠 권한을 국회에 부여하는데, 한국 자동차 관련 세제를 변경하겠다고 미국 쪽과 합의했기 때문이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한-미 협정 검토보고서에서 “정부는 조세의 변경이 자신의 권한이 아님을 미국 쪽에 밝히고 거부했어야 함에도, 세제개편을 약속해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미 협정이 발효되면 사법권까지도 도전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우선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의 대상에 사법부 판결도 포함된다. 우리 국민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판결에 대한 도전’을 외국 투자자에게는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외교부는 법해석이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만 따져 사법주권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김하늘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통신망에서 “외교부가 사법부의 재판권을 빼앗아 제3의 중재기관에 넘겨준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게다가 한-미 협정이 발효되면 중재기관도 통상당국의 구속을 받는다. 양국 통상장관이 구성하는 공동위원회가 준거법과 협정 규정, 부속서 등 모든 법규에 관한 해석권한을 갖고 있는데, 중재판정부는 공동위원회의 이러한 해석에 어긋나는 판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우리 법원도 공동위원회의 해석을 존중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법원이 한-미 협정 체결 과정에 전문성이 충분하지 않아 공동위원회의 협정 해석 근거와 판단을 상당히 존중할 것이라는 게 외교부가 국회에 내놓은 공식 답변이다. 이는 법률의 최종적인 해석권한은 법원에 있고,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는 헌법 규정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헌법학)는 “국내법 제·개정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법관이 법률을 해석할 수 없는 게 아닌데 통상관료만이 조약을 전문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외교부의 주장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한-미 협정이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하고, 또 한-미 협정을 근거로 개인이 미국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미국의 이행법이 규정하고 있다. 공동위원회의 협정문 해석은 미국 사법 체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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