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들어선 이후 매출이 80%까지 줄어 가게를 접으려고 했어요. 지금은 40% 정도 빠진 정도죠. 견디다 못한 슈퍼 2곳이 문을 닫아서 그나마 약간 회복된 겁니다.”
서울 중랑구에서 10여년째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나보희(61)씨는 20일 기업형 슈퍼마켓의 위력을 온몸으로 실감한다고 말했다. 길 건너 100여m 지점에 롯데슈퍼 묵동점이 들어선 것은 2009년 8월이다. 칸막이를 설치하고 며칠 만에 공사를 끝내 버렸다. 상인들이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 신청을 내고 물건 반입을 저지하기도 했으나 때는 늦었다. 지친 상인들은 결국 3개월 만에 롯데슈퍼와 24시간 영업 금지, 담배 판매 2년 유예 등의 조건에 합의를 했다. 나씨는 이후 가게를 아내에게 맡긴 채 용달차 물건 배달을 하며 다른 수입을 찾아나섰다. 나씨는 “사실 내 가게라서 임대료가 없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며 “슈퍼 마진이 2~3% 정도인데 매출이 80% 줄면 버틸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나씨 같은 중소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에 관한 법률(상생법)이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무력화될 위기에 처했다. 협정이 경제적 수요 심사에 따른 영업 제한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통법과 상생법은 이미 한-유럽연합 협정과 충돌한다. 한-미 협정은 더 큰 문제다. 한-유럽연합 협정에 없는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때문이다. 미국 투자자가 유통법·상생법 탓에 국내 유통시장 진출에 제한을 받게 되면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중소상인 보호를 위한 마지막 빗장마저 풀리게 되는 것이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동네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나보희씨가 21일 오후 서울 중랑구 묵1동 자신의 가게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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