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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슈퍼 부자들도 보편적 복지 시스템의 혜택을 받도록”

등록 2011-10-31 16:22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교수와 임원혁 KDI 박사.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교수와 임원혁 KDI 박사.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교수와 임원혁 KDI 박사 대담
“금융자유화의 혜택을 미국인이 아니라 미국 은행이 다 가져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의 엄청난 생산성 격차”
“학생들이 학교·학원에 묶여 있는데 기혼 여성들의 고용시장 이탈은 이상”
“재벌구조 비슷한 스웨덴에서 한국처럼 재무 부정행위 일어나지 않아”
“이주문제에 대해 주춤…학자들이 ‘한국에 이주 노동자가 있냐’고 물을 정도”

 리처드 프리먼(68) 하버드대 교수(경제학)는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경제학자다. 학계와 행정부를 오가며 주요 경제정책 입안에 참여해왔고, 현재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과학 및 기술인력 프로젝트장을 맡고 있다.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시카고와 예일대, 런던정경대 등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국제 노동 기준과 노동자 경영 참여 등 다양한 관심사에 대해 300여편의 논문과 30여권의 저서를 내며 활발한 저술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2009년 방한해 한국의 노동 현안을 주제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등 우리 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학자 중 하나다. 지난 25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개원 40주년 기념 국제회의 참석차 방한해 임원혁 박사(KDI 국제개발협력센터 개발협력실장)와 국내외 경제 이슈 전반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임 박사는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학위를 받은 뒤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 등에서 근무했다.

임원혁 실장(이하 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각국은 전통적인 경기부양책을 활용했다. 정책 입안가들은 돈을 풀면 위기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위기는 훨씬 더 심각한 것 같다. 위기가 해결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많다.

프리먼 교수(이하 프리먼) 이번 침체(리세션)가 과거보다 훨씬 나쁜 이유는, 이것이 정상적인 금융위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유럽과 달리 미국 경제는 오랜 기간 일반 근로자들의 실질 임금이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굉장히 소수의 사람들에게 많은 소득이 몰렸다. 이미 질병이 존재하고 있었던 거다.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오래 전부터 금융규제 완화를 추진했고, 이것이 결국 미국과 세계에 재앙이라는 것이 이번 위기로 드러났다. 우리가 지금까지 겪었던 침체 경험에 비춰볼 때, 고용에 영향을 끼치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미국 정부와 의회의 태도에 놀랐다. ‘책임성 부족’의 문제를 말하는 거다. 금융회사에 강도 높은 책임 추궁을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별다른 조처가 없었다.

프리먼 동의한다. 나 역시 국가가 납세자 돈으로 구제를 받은 금융회사에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의회와 금융회사들은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특히 금융회사들은 반성은커녕 오히려 위험성이 큰 자산을 숨기는 등 계속해서 소비자 권익을 배반하는 행위를 지속했다. 또 구제금융을 받고 살아난 뒤 입에 시가를 물고 ‘이제 다시 우리가 나라를 운영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아직도 위기가 닥치면 또다시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단호하게 한마디 하고 싶다. 절대로 두 번은 없다고.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교수.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교수.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미국 월가에서 이른바 ‘점령 시위’가 불붙었다. 이번 시위를 어떻게 규정하고 전망하나?

프리먼 월가 시위는 ‘국가(미국)의 양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미국의 정치권은 선거에 엄청난 도움을 주는 월가 사람들이 곧 친구이기에, 그들이 미국 국내총생산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는 것에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아왔다. 그런데 일반 시민들은 ‘잠깐! 아무도 금융회사에 책임을 묻지 않잖아’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합법적인 은행 시스템이 부의 독점에 이용되고, 그 시스템이 여전히 자기 소득을 통제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거다. 예전 같으면 월가 시위자들은 이데올로기주의자나 좌파로 치부되면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거다. 이번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경제학자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다. 부자들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정당한 소득분배의 권리와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소득격차가 지속된다면 우리는 중세 시대로 돌아갈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번진 점령 시위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느냐는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다. 미국 극우파들의 ‘티파티’가 공화당에서 이렇게 중요한 구실을 할지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금융자유화로 미국은 금융에서 상당한 비교우위를 갖게 됐다. 최근 국제적인 차원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금융거래에 과세하고 규제를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늘 미국의 반대가 강하다. 미국의 이익이 침해될 것을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프리먼 정확히 말하면, 금융 자유화의 가장 큰 혜택은 미국인들이 아니고 미국 은행들이 가져간 것이다. 이들은 차입(레버리지)을 통해 위험부담을 엄청나게 키웠고,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리스크를 공유하도록 만들었다.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란 주장은 거짓말이다. 바로 그 부분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한국의 경제 현안을 얘기해보자. 중요하고 오랜 이슈 중 하나가 노동시장의 이중성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도입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가능하면 오랫동안 일자리에 붙어 있자는 심리가 퍼지면서 임금 피크제 등이 도입됐지만,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 체제는 여전하다. 서구 학자들은 한국이 성과 기반의 임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격차, 노조와 비정규직의 관계도 문제다.

프리먼 나 역시 갑자기 학교에서 잘리면 피잣집을 열거나 김치를 담가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사업에 관한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능력도 없기 때문에 곧 망할 것이다. 이는 생산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것이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의 엄청난 생산성 격차다.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도 한국의 연구개발(R&D)은 대부분이 제조업에서 일어나고 있다. 서비스 부문의 연구개발은 미흡하다. 예컨대 한국에서 누군가 장사를 시작할 때 과연 누구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는가? 한국에는 국가적으로 이런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은 더 많이 일을 하면 더 안정적인 보상과 직업적인 안정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정규직이냐 아니냐는 고용계약 형태가 중요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임금 격차를 줄이고 평평하게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교수와 대담을 나누는 임원혁 KDI 박사.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교수와 대담을 나누는 임원혁 KDI 박사.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연령대별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은 일본과 비슷한 엠(M)자 곡선을 보인다. 30대 여성들은 여전히 일을 하고 싶어하지만, 보육·육아 환경이 열악하고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제와 장시간 근로 등의 문제 때문에 고용시장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프리먼 한국의 어린 학생들은 일과의 대부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낸다. 그렇다면 자녀를 둔 여성들이 일을 하기에 더 편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여성들이 아이들 교육에 매달리느라 일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한다. 어머니와 자녀 둘다 엄청난 부담과 불행을 안고 사는 것이다. 결국 입시 부담 등 교육 문제를 개선하는 게 여성의 경제활동을 제고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독일은 한때 선진국 가운데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가장 낮았지만 지금은 미국 수준으로 높아졌다. 반면에 독일 여성들의 근로시간은 매우 짧다. 여성들이 노동시장을 떠나지 않고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회적인 지출이 크지 않다. 국민들의 세 부담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매우 낮다. 정부의 재정 규모를 늘려 사회적인 서비스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런데 최근 3년 동안 세금 부담은 점점 더 완화돼왔다. 이와 관련해 보편 복지냐, 선택 복지냐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프리먼 이 문제에 관해서는 잘못된 이분법이 있다.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보편 복지와 선택 복지는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문제는 세부담을 늘려 어느 정도 복지의 보편성을 확충하는 동시에 중산층의 지지도 확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보편 복지에 찬성한다. 슈퍼 부자들도 빈곤층과 마찬가지로 보편적 복지 시스템의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은, 모든 이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고 사회적 안정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가는 모두가 갹출해야 한다.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려면, 안타깝게도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런 조처를 매우 신속하게 취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대기업에 대해 양면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춤추는 꼬끼리’라고 할까. 대기업들이 국제 무대에서 좋은 성과를 보이고 혁신을 주도하지만, 국내에선 거버넌스와 규제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들이 혁신적인 신생 기업의 성장을 저해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프리먼=한국의 재벌과 비슷한 기업 형태를 가진 나라에서 가장 균형을 잘 잡은 게 스웨덴이다. 스웨덴의 대기업 노동자들은 대부분 노조에 가입돼 있고 고임금을 받는다. 정부와 기업은 노조를 해산시키거나 노조와 싸우지 않고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자세를 보인다. 한국처럼 재무와 관련된 부정행위가 일어나는 건 매우 찾아보기 어렵다. 또 한 가지 스웨덴 대기업들은 사실상 재벌가가 운영하지 않는다. 일부 가족 경영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전문 경영인이 기업을 책임지는 구조다. 스웨덴의 사례에 한국의 대기업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있다.

   

한국은 오이시디 나라 중 두 번째로 빨리 늙어가는 나라가 되었다. 지금 세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다. 한국이 사회적 부담을 감내할 수 있는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까?

프리먼 경제 성장 측면에서 노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민(외부 노동력)을 많이 받아들이거나 더 많은 아이를 낳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주 노동자 문제에 대해 일본과 달리 약간 주춤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학자들 중에 ‘한국에도 이주 노동자가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종종 있을 정도다. 이주 노동자들이 분노하지 않도록, 거절당했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들을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융합시키는 것이 정책적인 측면에서 큰 도전 과제가 될 것이다.

정리/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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