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그렇구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구제금융, 이거 모르시는 분 없을 겁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우리가 국제통화기금(IMF)한테서 달러를 융통한 것처럼, 최근 재정위기에 처한 유럽국들이 이 기금을 통해 긴급자금을 수혈받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유럽판 아이엠에프’인 셈이죠. 애초 급한 불을 끄기 위한 한시적인 비상기구로 2010년 출발했지만, 유럽 전역으로 위기가 확산되자 2013년부터는 아예 상설기구(유럽안정기구·ESM)로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이 기금의 재원은 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유로존) 나라가 경제력에 따라 분담합니다. 독일과 프랑스가 거의 절반을 부담합니다. 유로존 국가의 출자금과 보증을 자산으로 돈을 마련해, 지급 능력이 부족한 나라들의 국채를 사들여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지금까지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이 자금 수혈을 받았습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번호표를 뽑고 대출 순서를 기다리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대출 여력입니다. 지난 3월 대출 규모를 4400억 유로로 두 배 가까이 늘리기로 했지만, 각국의 의회가 이를 승인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최대 분담국인 독일 의회의 승인 여부 때문에 지난달 말부터 전세계 증시가 크게 요동을 치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독일 의회를 통과하면서 일단 한 고비를 넘겼다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증액안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만약 덩치가 큰 스페인과 이탈리아까지 도와줘야 한다면 최소한 1조4000억유로 이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2013년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재정위기 5개국’의 국채 규모는 9360억유로, 향후 3년 동안 이들 나라의 재정적자 규모는 4900억유로에 이릅니다. 국제통화기금이 3분의 1을 분담하더라도, 최소한 9500억유로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나아가 재정이 부실한 남유럽 국가 전체의 채무 규모는 3조5000억유로나 됩니다.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빚을 내서 기금을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각국이 분담 규모를 더 늘릴 수 없다면, 기금 자체의 신용으로 돈을 빌려 증액 효과(레버리징)를 내자는 것입니다.
기금은 자금조달이 불가능한 나라의 채권과 독일 등 최우량국 채권을 한데 섞어 파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합니다. 위험국과 우량국 신용을 합쳐 일종의 물타기를 하는 셈인데,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악명 높은 부채담보부채권(CDO)과 그 구조가 매우 비슷합니다. 신용평가사들은 이런 식의 기금 확대가 유로존 전체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태가 더 나빠지면 자칫 유럽 전체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입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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