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년 전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5단체장, 대·중소기업 대표 등 무려 150여명을 불러모아 ‘요란하게’ 동반성장대책을 발표했다. 동반성장위원회 설립, 2~3차 협력사에도 하도급법 적용 등을 뼈대로 한, 이른바 ‘9·29 동반성장 추진대책’이다. 특히 당시 정부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반장으로 지식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동반성장 추진 점검반’ 회의를 다달이 열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1년이 지난 지금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추진 점검반은 지난 1월까지 단 3차례 회의를 열고는 슬그머니 지경부의 서면보고로 회의를 대체했다. 동반성장대책 주무부처인 지경부는 오는 11월 동반성장주간이 열린다는 이유로, 지난 1년간의 성과를 점검하는 자료 하나 내놓지 않았을 정도다. 물론 법·제도적인 토대가 마련됐고,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사업이나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에서 대기업들이 다소 양보하는 등 일부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중소기업 쪽에선 “동반성장 노력이 부족하다”고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9·29 대책의 세부 추진상황을 뜯어봐도 ‘동반성장이 뿌리내렸다’고 보기엔 이르다. 지난 27일 동반성장위가 발표한 중소기업 적합 업종·품목은 고작 16개에 그쳤다. 그나마도 대기업에 사업이양을 권고한 것은 세탁비누 1개뿐이다. 두부, 레미콘 등 쟁점품목은 앞으로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익명성 보장을 위해 개별기업 뿐 아니라 중소기업협동조합에 원자재값 변동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 신청권을 주도록 하도급법령을 개정한 것도 크게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 지난 7월 법 시행 이후 한국골판지포장공업협동조합이 군인공제회를 대상으로 신청권을 행사한 1건이 유일한 사례다. 서병문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협동조합한테 신청권 뿐만 아니라 협상권을 주지 않고선 실제 조정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마지못해 동반성장에 나서는 듯한 대기업들의 태도도 문제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이달 초 공정위 압박에 못 이겨 판매수수료 3~7%포인트 인하를 약속하고도, 아직 실행방안을 내놓지 않고 ‘버티기’하고 있다. 현대차는 동반성장지수 평가대상 대기업 56곳 가운데 가장 먼저 협력업체들과 동반성장협약을 맺은 지 석달만에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공정위 직권조사를 받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다. 김기찬 한국중소기업학회장(가톨릭대 교수)은 “동반성장 흐름에 반발하는 대기업들은 ‘따뜻한 기업이 살아남는다’는 시대정신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 고 지적했다.
이 때문인지 중소기업 현장 분위기는 냉랭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대기업 협력업체 500곳을 상대로 설문조사했더니 60%가 “(동반성장대책 이후) 변화없다”고 답했다. 하도급법이나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유통·서비스 중소기업 쪽에선 “정부가 동반성장 노력을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66%로 “잘하고 있다”(31%)의 갑절이 넘었다. 조유현 중기중앙회 정책개발본부장은 “동반성장이 일회성 반짝 발표가 아니라 시스템화되기 시작한 건 큰 변화”라면서도 “보다 촘촘한 정책 운영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주문했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도 “동반성장대책의 학습효과가 쌓이려면, 적합업종 선정 등에 속도를 내야한다”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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