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변동 막기 역부족
“정부, 자금조달 역점보다
개입의 실효성을 높여야”
“정부, 자금조달 역점보다
개입의 실효성을 높여야”
최근 환율이 급등하면서 외환당국의 개입이 ‘저강도 국지전’에서 ‘고강도 전격전’으로 펼쳐지는 양상이다. 평소 미세 개입을 원칙으로 하던 외환당국은 지난주에 대량의 달러를 매도하면서 힘과 존재를 각인시켰다. 외환시장에선 당국이 지난 한주에만 100억달러 가까운 물량을 쏟아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장개입에 필요한 재원은 외환보유고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지난 8월말 현재 3122억달러다. 지난주에만 외환보유액의 30분의 1가량을 쓴 셈이다. 그렇다면 환율 방어에 필요한 실탄은 충분한 걸까?
외환보유액은 대외 지급을 위한 국가비상금의 성격도 있어 시장 안정용만으로 쓸 수는 없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리먼사태’ 때처럼 외국 금융기관들이 갑자기 대출금이나 채권·주식투자 자금을 회수해 나갈 경우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계 등 외국인 자금은 재정위기가 확산되면 한국 시장에서 급격하게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8월 말 현재 외국인의 증권투자자금 잔액은 350조원으로 이 가운데 유럽계가 3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 중 가장 큰 불안요인이었던 금융기관 단기 차입금 규모도 1015억달러에 이른다. 금융위기 때 비해 단기 차입금 비율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급격히 이탈할 경우 국내 금융시장을 충분히 뒤흔들 수 있는 규모다.
정부도 실제 운용할 여지가 있는 외환보유액 규모는 1000억달러 수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외환보유액 2000억달러는 대외 신인도 유지를 위한 심리적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환율방어를 위해선 자금조달에 역점을 두기보다 개입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외환딜러는 “정부가 잇따라 시장에 개입했지만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것은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라며 “시장의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한 강력한 신호를 주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8년에도 환율이 급등하자 600억달러 이상의 외화를 시장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그 효과는 크지 않았고, 달러 매수세가 강력한 시점에서 정부 개입은 저가에 물량을 넘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론이 나오기도 했다.
외화자금시장에서의 달러 유동성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변지영 우리투자선물 연구원은 “안정적이던 1년 이하의 단기물 통화스와프(CRS) 금리가 지난주 후반부터 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통화스와프 금리는 외국 은행의 국내 지점들이 단기외채를 들여와 달러를 원화로 교환하는 데 적용되는 금리로, 낮을수록 원화에 견줘 달러의 수요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원화 가치가 낮다는 것을 뜻한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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