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 총체적 실패
대외적 요인에 의한 일시적 공급 문제로 판단
6월에야 수요쪽 불안 인지…뒤늦게 정책 수정
‘저금리 고환율’ 고집한채 뒷북처방으로 화 자초
세계경제 둔화 본격화…이제 손발 묶인 상황
대외적 요인에 의한 일시적 공급 문제로 판단
6월에야 수요쪽 불안 인지…뒤늦게 정책 수정
‘저금리 고환율’ 고집한채 뒷북처방으로 화 자초
세계경제 둔화 본격화…이제 손발 묶인 상황
“이상기온과 국제 원자재값 상승 등 일시적인 공급 요인 탓이 크다. 3분기 이후에는 소비자물가가 3% 수준에서 안정화될 것이다.”
올해 3월 소비자물가가 4%대 고공행진을 이어갈 때 물가 당국자들이 모범답안처럼 내뱉던 말이다. 하지만 물가는 4~6월 다소 주춤하는 듯하더니 7월부터 급등세로 돌아섰고,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던 8월에는 5%대로 치솟았다. 연초부터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방위 대책을 쏟아냈지만 결국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 이른 것이다.
■ 잘못된 진단 정부는 올 상반기까지도 물가불안의 주된 원인을 공급 쪽 요인에서 찾았다. 이상한파와 구제역 파동으로 농축수산물 값이 뛰고, 중동 정세 불안으로 유가 등 국제 원자재값이 뛴 게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날씨와 같은 일시적인 변수이거나 통제 불가능한 대외적 요인으로 탓을 돌린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난해 급속한 경기회복을 거치면서 우리 경제의 인플레 압력이 커져왔다고 진단한다. 홍춘욱 국민은행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우리 경제가 6.2%의 급속한 회복세를 보이며 어느 때보다 인플레 압력이 커진 상태”라며 “뒤늦게 정책 판단을 바꿨지만 때가 너무 늦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근원물가는 올 2월부터 줄곧 3%대 오름세를 보였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끼치는 수입물가는 지속적으로 두자릿수 상승률을 나타냈다. 가공식품과 서비스 가격 오름세가 본격화하는 시점에도 정부는 농산물값 타령만 해댔다. 정부는 지난 6월에야 정책 판단을 수정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가불안의 요인이 수요 쪽으로 전환돼 당분간 물가 불안이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수요 쪽 불안 요인에 대한 정책수단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정부 대책으로 물가를 잡는 데 어려움이 크다”고 고백했다.
■ 안이한 예측 정부는 올 하반기부터 물가가 잡힐 것이라고 장담했다. 정부는 이번에도 ‘9월 이후에는 4% 안팎으로 안정될 것’이란 전망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런 낙관의 근거는 2009년 하반기 이후 물가 상승세가 두드러져 상승률이 자연스럽게 하락할 것이란, 이른바 ’기저효과’에 대한 강한 믿음 때문이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9월 이른바 ‘금배추 파동’을 겪으며 3.6% 급등했고, 이후 연말까지 3.3~4.1%의 상승률을 보였다.
그러나 8월 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훨씬 크고, 근원물가와 인플레 기대심리 역시 높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희망대로 물가 상승세가 꺾일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기저효과에 따른 지표물가의 하락은 통계상 착시여서 실제 서민들의 물가부담이 가벼워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강중구 엘지경제연구원 책임연연구원은 “정부 말대로 9월 물가는 4%대 이상 오르지는 않을 것 같다”며 “하지만 뒤집어 보면 물가가 이태 연속 4%대 이상 오른 것이란 점에서 체감물가 상승률은 여전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 때늦은 대응 물가대책 실패의 근본적인 요인은 금리·환율 등 거시정책의 때를 놓쳤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연초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한국은행은 세차례 기준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가파른 물가상승세는 한은의 금리 조정이 시중의 유동성을 줄이고 인플레 기대심리를 꺾기엔 역부족이었란 점을 그대로 반증한다. 국제통화기금조차 “(한은의 금리인하가) 한국 경제의 총수요 압력을 완화하거나 인플레 기대심리를 막기엔 부족하다”며 정부의 미시적 물가대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대통령과 정부는 지난해 초 국내 경기가 상승세로 돌아선 뒤에도 ‘저금리 고환율’이란 거시경제 정책의 큰 틀을 바꾸지 않았다. 물가폭등의 단초를 스스로 제공한 셈이다. 정부는 올 들어 물가상승세가 심상치 않자 전 부처를 동원한 ‘가격 때려잡기’에 골몰했고, 기업의 팔을 비틀어 ‘두더지 게임’하듯 제품 가격을 찍어 누르는 근시안적인 대책에 주력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홍 연구원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금리인상을 통한 유동성 회수 지적이 많았는데 미적대다 때를 놓쳤고, 금리인상 폭도 인플레 심리를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며, “이젠 세계적인 경기둔화 우려가 다시 커지는 상황이어서 정부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성장도 물가도 다 놓친 셈”이라고 꼬집었다.
김회승 류이근 기자 honesty@hani.co.kr
추석을 앞두고 소비자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가운데 1일 오후 서울 중구 봉래동2가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이 과일과 채소 등 신선식품의 가격표를 살펴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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