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하는 피해자, 외면하는 관료들 박남준 삼화저축은행예금피해자대책모임 대표(가운데)가 21일 낮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저축은행 부실화 원인규명 및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금융 당국의 저축은행 관리소홀에 항의하며 피해자 보상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석동 금융위원장, 진동수·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청문회 오른 전·현직 경제수장 6명이 ‘재무부 출신’
저축은행 등 금융정책 실패 책임 안지는 ‘이너서클’
윤증현·김석동 등 참여정부 이어 MB정부도 중용
저축은행 등 금융정책 실패 책임 안지는 ‘이너서클’
윤증현·김석동 등 참여정부 이어 MB정부도 중용
저축은행 청문회 증인 살펴보니
지난 20일 저축은행 청문회가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실에 전·현직 경제수장 8명이 한자리에 모여 앉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이 가운데 진념 전 재정경제부 장관과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을 제외한 6명은 모두 소위 ‘모피아’, 즉 옛 재무부 출신 경제관료들이었다.
이번 청문회 풍경은 한국의 금융정책과 관련한 ‘오래된 진실’ 두 가지를 다시 수면 위로 드러냈다. ‘정권은 바뀌어도 모피아는 영원하다’는 것과 ‘실패한 금융정책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개혁’을 지향했던 노무현 정부도, 보수정부로 분류되는 이명박 정부도 ‘모피아’를 중용하는 모습에서는 똑같았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 금융위원회 위원장(전광우)과 부위원장(이창용)을 모두 민간에서 뽑는 등 금융관료를 배척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재무부 출신을 요직에 많이 기용하고 있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그들의 ‘관치 노하우’가 필요해진 것이다.
재무부 출신으로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이었던 강만수씨는 이명박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내고 현재 산업금융지주 회장을 맡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금융정책실장이었던 윤증현씨 역시 노무현 정부 때 금융감독위원장에,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에 기용됐다. 김석동 현 금융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가장 잘나가던 경제관료 중 한명이었다. 임태희 청와대 비서실장,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 등도 모두 재무부 금융정책국 출신이다.
문제는 ‘금융정책’이라는 가장 핵심적이며 중요한 경제정책이 외부 견제를 거의 받지 않는 일종의 ‘이너서클’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정책실패가 드러나도 제대로 된 책임추궁이 이루어지지 않고, 다시 주요 정책라인에 기용되거나, 공공·민간 금융기관의 노른자위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되풀이된다.
저축은행 부실사태는 ‘모피아’에 의해 이뤄진 금융정책 실패의 한 예에 불과하다. 노무현 정부 당시 재정경제부, 금감위 등은 ‘금융허브’ ‘금융산업 육성’ ‘규제 완화’ 등의 기치를 내세우며, 국내 은행들의 ‘몸집 불리기’를 적극 유도했다. 국내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늘리기에 혈안이 됐고, 이는 현재 우리 경제 최대 ‘뇌관’인 가계부채 문제로 돌아왔다. 당시 금융당국은 ‘선진금융기법’이라며 파생상품 투자도 장려했다. 당시 대규모 파생상품 투자에 나섰던 우리은행은 결국 금융위기 직후 1조원이 넘는 손실을 냈다.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직무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지만, 금융관료 중에 이를 책임진 사람은 없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는 “복지, 교육, 건설, 외교 등 다른 정책분야는 정권이 바뀌면 방향이 달라지고 정치권력이 어느 정도 컨트롤을 한다”며 “하지만 금융정책은 전문적이고 파급력이 크다는 특성 때문에 정치적·사회적 통제력이 작동하지 않고, 금융관료들에 의해 그들만의 논리와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좌우돼왔다”고 말했다. 강경훈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실패한 정책에 형사처벌을 물을 수는 없겠지만, 실패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해당 관료를 정책라인에서 배제하는 등 책임을 지우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며 “장기적으로는 학계, 민간 전문가, 정치권 등이 ‘그림자위원회’ 등을 통해 금융정책에 다른 목소리를 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움직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옛 재무부 출신(모피아) 주요 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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