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단기자금 조달 위한 무담보채권
부실 숨긴채 발행 가능 ‘투자위험’ 커
부실 숨긴채 발행 가능 ‘투자위험’ 커
부실한 건설회사들이 기업어음(CP)을 발행한 지 얼마 안 돼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21일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엘아이지(LIG)건설은 신청을 며칠 앞두고 42억원의 기업어음을 발행했고, 지난 12일 삼부토건도 같은 상황에서 60억원 규모를 발행했습니다.
기업어음은 신용상태가 양호한 기업이 단기자금 조달을 위해 자기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의 어음을 말합니다. 기업어음 시장은 이를 발행한 기업과 할인·매출기관 및 매수기관으로 구성됩니다. 기업이 기업어음을 발행하면 은행·증권사를 통해 개인이나 기관투자자에게 팔려 나갑니다. 현재 기업어음 금리가 시중 금리의 갑절에 가까운 7~8%에 이르다 보니 투자자들이 몰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업들이 부실을 숨기고 손쉽게 이 기업어음을 발행할 수 있었을까요? 기업어음은 이사회 의결이나 발행기업 등록, 유가증권신고서 제출 등과 같은 절차가 없어 발행이 간편합니다. 2009년 2월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 발행자 요건과 최저 신용등급에 대한 규제까지 없앴습니다. 그러자 규모가 크게 늘어 2007년 말 55조원대이던 기업어음 발행잔액이 올 2월 말에는 83조원대로 커졌습니다.
문제는 기업이 재무상태와 위험 정도를 감추고 기업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보니 정작 투자자들이 회사의 부실을 알 수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들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평가해 고객에게 알려야 할 은행이나 증권사들도 이를 살피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데 급급합니다.
발행기업과 투자자 간의 ‘정보 비대칭성’도 위험성을 키우지만, 기업어음은 무담보 채권으로 원금 보장이 안 된다는 점에서 고수익의 함정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부도 기업의 기업어음은 은행 담보대출 등 선순위 채권에 대한 변제가 다 이뤄진 뒤에 남은 자산으로 변제를 받기 때문에 투자자 손실이 커질 수 있습니다. 1999년 대우사태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당시 대우는 단기차입을 위해 대규모로 기업어음을 발행한 뒤 도산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혔습니다. 역으로 기업어음 수익률이 높을수록 발행기업이 부실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한국은행은 기업어음 발행액이 큰 기업이 부실화되면 기업어음 발행 및 유통 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되는 것은 물론 이를 편입한 간접투자상품에 대한 환매 요구가 집중돼 금융 시장 전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탓에 기업어음의 불투명성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투명성을 높이고 투자자의 정보접근성을 확대하자는 것입니다.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게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단기전자사채입니다. 기업어음은 등록 의무가 없지만 단기전자사채는 증권예탁결제원 등록을 의무화하자는 것입니다. 종이어음 형태로 유통되는 데 따른 불편을 없애기 위해 발행과 유통을 전자적으로 이뤄지도록 했습니다. 이른바 ‘무권화’입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담은 ‘단기전자사채법 제정안’은 국회에서 1년이 넘도록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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