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성장률 관심 없어…물가가 발등의 불”
실제 ‘환율하락·금리인상’ 이어질지 지켜봐야
실제 ‘환율하락·금리인상’ 이어질지 지켜봐야
윤장관 ‘안정성장’ 첫 언급
“지금은 명백하게 위기상황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가 최근 물가 움직임을 두고 한 말이다. 그동안 경제운용기조를 성장과 물가 ‘두마리 토끼 잡기’, 또는 사실상 ‘성장우선주의’로 설정했던 정부가 물가를 우선시하는 ‘안정성장’ 기조로 선회하는 이유다. 이대로 물가상승세가 이어진다면 설사 올해 5%를 넘는 성장률을 달성한다 해도, 칭찬은커녕 여론의 ‘몰매’를 맞을 것 같다는 위기의식을 정부가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두마리 토끼 잡기 포기 지난 연말 ‘5%(성장률)+3%(물가상승률)’를 올해 경제전망으로 내놓을 때만 해도 정부는 자신만만했다. ‘5% 고성장을 하면서 물가를 어떻게 3%로 유지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올해 들어 두달도 지나지 않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먼저 공급 쪽의 물가환경이 예상보다 좋지 않았다. 이상기후로 농산물가격 고공행진이 지난해에 이어 계속됐다. 역대 최악의 구제역 파동도 일어났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꿈틀대던 국제유가는 리비아 사태 등으로 급등세로 접어들었다.
정부는 지난 두달 동안 “물가상승은 외부·공급 요인 때문”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공공요금 동결, 기업들 가격 인하 압박 등 단기대책으로 물가잡기 총력전을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단지 공급 요인뿐 아니라 정부가 고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견지해온 ‘저금리·고환율 기조’가 물가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여론도 커졌다.
결정타는 4.5%까지 치솟은 2월 소비자물가였다. 소비자물가뿐 아니라 근원물가(석유·농산물 제외)도 3.1%, 개인서비스요금도 3% 상승해 인플레 기대심리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이상 외부 탓만 하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물가불안 와중에도 수출 드라이브, 부동산경기 부양 등을 통해 5% 성장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쉽게 포기하지 못했던 정부도 결국 당면 과제는 물가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재정부 관계자는 “일단 사람들이 ‘물가가 으레 4~5%는 간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큰일이다. 저축은 안 하고 투기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은 아무도 올해 성장을 5% 하는지 못하는지 관심이 없다. 물가상승률이 4% 이상 올라가면 ‘발등의 불’은 물가”라고 말했다.
■ 지속여부는 지켜봐야 정부가 정책기조를 수정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단지 선언이 아니라 실제 실천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정책기조를 바꾸는 출발점에는 기준금리와 환율이 있다.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원-달러환율 1100원을 떠받치려는 시도를 더이상 하지 않는지, 한국은행에 금리인상을 자제하라는 직간접적인 압력을 중단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지금 정부의 ‘위기의식’이 얼마나 지속될지도 주시해야 한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일단 악화하는 인플레 기대심리를 달래기 위해 일시적으로 신호만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 봄철 수확기를 맞아 농산물가격이 다소 안정되고, 중동·북아프리카 사태가 진정돼 국제유가 상승세도 주춤해지면 다시 기존의 성장일변도 정책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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