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국외 조선소엔 돈 붓고, 국내 노동자엔 해고 칼끝

등록 2011-02-16 19:35수정 2011-02-17 11:42

한진중공업 노조원들과 불법해고자들이 16일 부산 금정구 금사동 부산지방노동위원회 앞에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출하기에 앞서 정리해고 철회와 신속하고 공정한 판정을 촉구하고 있다. 왼쪽은 지난 14일 밤 9시께 회사쪽이 해고대상 노조원들에게 해고사실을 통지한 핸드폰 문자메시지. 
 부산/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한진중공업 노조원들과 불법해고자들이 16일 부산 금정구 금사동 부산지방노동위원회 앞에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출하기에 앞서 정리해고 철회와 신속하고 공정한 판정을 촉구하고 있다. 왼쪽은 지난 14일 밤 9시께 회사쪽이 해고대상 노조원들에게 해고사실을 통지한 핸드폰 문자메시지. 부산/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한진중 ‘수비크’ 거액 투자뒤
수익 적어 재무 악화되자
노동자들 고용불안 내몰아
조선업계 국외로 국외로…
국내 일자리 감소 ‘삭풍’
‘(작업복이 땀에 절어) 등짝에 허연 소금꽃이 피어 서 있던’ 172그루의 나무가 잘렸다. <소금꽃나무>를 쓴 여성 용접공 김진숙씨는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의 35m 크레인 위에서 42일째 농성중이다. 회사는 지난 14일 직장폐쇄 신고를 내고 바로 다음날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희망퇴직자 228명을 포함해 400명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74년 된 ‘대한민국 조선 1번지’의 위기는, 국내 조선산업 현장에 펼쳐질 잿빛 미래의 징후처럼 보인다.

■ 10%대 영업이익률에도 위기 왜? 한진중공업의 조선·플랜트 부문 영업이익률은 지난 2008~2010년 12.8~19.7%였다. 대우조선해양 등 다른 대형조선업체의 한자릿수 영업이익률에 견줘 괜찮은 성적이다. 지금까지 인도한 컨테이너선 척수(183척)는 세계 5위이며, 컨테이너선 건조 경쟁력에선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 2년간 영도조선소의 수주 실적은 ‘0’이다. 남아 있는 일감은 선박 7척뿐이다. 지난해 4분기에는 영업이익도 적자로 돌아섰다. 순차입금이 2조원(지난해 3분기 기준)에 육박할 만큼 현금흐름도 좋지 않다. 회사 쪽은 “자산 3200억원어치 매각, 기술본부 분사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생존하려면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재무구조 악화의 결정적인 원인은 필리핀 수빅조선소 탓이다. 한진중공업은 모두 15억달러를 들여, 지난 2007년 필리핀 수빅만에 영도조선소 면적의 10배가 넘는 조선소를 지었다. 대규모 투자 이후에도 수주선박의 선수금 보증, 공사미수금 등이 고스란히 한진중공업의 자금 부담으로 돌아왔다. 국외 투자법인의 손실은 한진중공업한테 지분법 손실로 이어지고, 차입금이 늘면서 재무안전성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송덕용 회계사는 “수빅조선소 투자 여파와 조선업 경기 침체로 예전처럼 높은 수익이 나지 않자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라고 정리해고의 배경을 분석했다. 노조는 회사가 경영실패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와중에도 조남호 회장 등 주주들은 수십억원어치의 배당을 챙겨간 것을 비판한다.

■ 조선업 ‘코리아 엑소더스’ 전조? 한 대형조선업체 고위임원은 “한진중공업은 부산 금싸라기 땅인 영도조선소 부지를 팔고 수빅조선소에 집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회사 쪽도 “영도조선소는 이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수빅조선소의 10배에 이르는 임금 수준으로는 중국 등 경쟁사의 낮은 선가에 맞설 수 없다는 항변이다. 반면 노조 쪽은 한진중공업의 1인당 평균 급여가 3398만원(2010년 3분기 기준)으로, 5000만원대인 대형조선업체들의 60~70% 수준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배를 짓는 도크 회전율이나 투입인원 등을 감안한 수빅조선소의 생산성은 아직 영도조선소의 35%에 불과하다.

지난해 한진중공업이 수주한 선박 29척은 모두 수빅조선소 물량이었다. 남은 일감만도 3년치다. 노조 쪽은, 회사가 전략적인 차원에서 수빅조선소로 물량을 돌린 것으로 의심한다. 회사는 구조조정을 통해 영도조선소를 엘엔지(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경쟁력을 갖춘 곳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계획이다. 김홍균 동부증권 연구위원은 “영도조선소도 인력 구조조정 뒤 계획대로 노후 설비를 교체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며 “수빅조선소도 지난해 3분기 영업흑자로 돌아섰고 올해는 세전이익도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빅조선소는 중대형 컨테이너선 6척을 동시 건조할 수 있는 대형도크 등이 강점이다.

엄청난 돈을 투자해 국외 생산기지를 세운 뒤의 ‘딜레마’는 한진중공업만의 일이 아니다. 에스티엑스(STX)는 중국 다롄에 진해조선소 면적의 5배가 넘는 조선소가 있고,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도 중국에 선박 블록공장을 갖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중국 칭다오현대조선소를, 현대미포조선은 베트남 비나신조선소를 운영중이다. 낮은 임금과 넓은 부지는 매력적이지만, 국내 조선업체들의 국외 진출 러시는 국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진중공업만 해도 영도조선소 정규직원이 1400여명만 남은 반면, 수빅조선소에는 협력업체 포함 2만명이 근무중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대형조선업체들은 국내 조선소 수주물량을 고가 선박 또는 드릴십이나 반잠수식 시추선 같은 해양플랜트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일자리 문제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는 게 한계다. 허민영 부경대 교수(경제학)는 “노동집약적인 조선업이 자본집약적으로 변해가고 최근 수주 회복세가 꺾이면, 한진중공업 외에 다른 대형업체들에서도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일자리 전직 프로그램 등을 활성화하고 ‘오지 않은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진중공업 사태가 극심한 노·사 대립으로만 끝나서는 안되는 이유기도 하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봉은사, 경기도 4대강 사업비 16억 압류 왜?
박찬호 “홈런 치라고 가운데 줬는데” 이승엽 “에이 형, 밖으로 빠졌거든…”
서울은 ‘SSM 무방비도시’
‘눈 벼락’이 하마터면…지붕 꺼진 삼척시장
5년차 부부의 ‘이별을 앞둔 3시간’
듣도 보도 못한 차종, 튀긴 하지만…
김정일 생일날…10만장 대북 전단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1.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2.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3.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4.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5.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