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트너 “수치 큰의미 없어”
일부 회원국 반대로 진전못봐
일부 회원국 반대로 진전못봐
미국이 지난달 경주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환율전쟁’을 진화시킬 묘수로 제안했던 ‘경상수지 목표제’와 관련해 일단 한발 후퇴하는 모양새다. 경상수지 목표제의 구체적 기준을 정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일단 큰 틀의 합의 마련에만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부 장관이 8일 G20 회원국들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밝힌 경상수지 ‘조기경보체계’는 지난 경주회의에서 합의된 ‘경상수지 예시적 가이드라인’의 연장선상에 있는 방안이다. 즉 경상수지 적자, 흑자로 나타나는 대외 불균형을 판단하는 예시적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에 의거해 어떤 나라의 불균형이 과도할 경우 조기에 경보를 주자는 방안이다. 감시와 경보를 담당할 주체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기경보체계’라는 새로운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이 아이디어는 경주회의 합의에서 크게 진전된 것은 아니다. 당시 합의문은 “우리가 합의할 예시적 가이드라인에 의거해 큰 폭의 대외 불균형이 지속된다고 평가될 경우, 이 불균형의 근본적 원인을 평가한다. 국제통화기금에 대외 지속가능성의 진척상황과 각 정책의 일관성에 대해 평가하도록 요청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보다 관심의 초점은 과연 예시적 가이드라인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이 될 것인지, 특히 경주회의에서 미국이 포기했던 ‘특정 수치’가 포함될 것인지, 이 가이드라인을 강제할 수단은 무엇인지 등이었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회원국들 간의 협상이 큰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독일 등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를 보는 나라들은 경상수지 목표제에 대한 반대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서울회의를 불과 10여일 앞두고 단행된 ‘2차 양적완화’ 조처가 중국, 독일, 브라질 등 많은 나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미국의 입지가 한층 좁아진 것도, 미국이 주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는 한 원인으로 보인다.
가이트너 장관은 지난 7일 “G20 선언문에 수치가 들어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경상수지 기준에 대한 합의의 기본 틀을 갖추자는 인식을 공유하는 게 우선 목표”라고 물러선 데 이어, 8일에도 “(목표치 설정은) 경제적으로 의미가 없다”고까지 말했다. 우리 정부 관계자들도 ‘기대치’를 낮추는 발언들을 내놓고 있다. 사공일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은 “가이드라인을 언제까지 도입하자는 시기만 합의해도 큰 성과”라고 주장했고,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서울회의에서 경상수지에 대한 특정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회의 선언문에는 가이드라인의 큰 원칙과 조기경보체계, 향후 추진 일정 정도만 포함되고, 세부내용 합의는 내년 11월 열릴 파리 G20 정상회의로 넘길 가능성이 크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