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산업팀장
정권이 각종 이벤트를 위해 기업들에 ‘의무할당’하는 준조세 부담 더욱 늘어났다 불만…
예전엔 낙하산 인사가 주요 기업 중심이었는데, 이제는 자회사, 협력회사 등 무한팽창
예전엔 낙하산 인사가 주요 기업 중심이었는데, 이제는 자회사, 협력회사 등 무한팽창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엠비(MB)정권의 임기도 반환점을 코앞에 두고 있다. 기업 편만 든다는 비난을 피하고자 ‘비즈니스’라는 포장을 입혔을 테지만, 일차적인 수혜자가 기업이라는 데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엠비정권을 바라보는 기업들의 속내에서 갈수록 불편함만 묻어나오는 이유는 뭘까? 왜 기업들은 엠비정권을 싫어할까?
한마디로 ‘귀찮게 한다’는 게 첫째 이유일 듯싶다. 기업 활동에 정권이 불쑥 끼어드는 징후는 널려 있다. 정권이 생색을 내야 할 각종 이벤트를 위해 기업들에 일정액씩 ‘의무할당’하는 행위는 대표적 사례다. 기업들로선 일종의 준조세로 여기는 게 당연한데, 이번 정권 들어 부담이 더욱 늘어났다는 불만이 높다. 정부 입김이 강한 기업들의 협력업체를 상대로 세무조사에 나선다거나 주요 기업들의 광고 집행 내역까지 일일이 들춰보려는 것도, 기업들은 민간 경제주체를 ‘관리’ 모드 아래 두겠다는 정권의 의지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정권의 구닥다리 행태도 빼놓을 수 없다. 드넓은 인터넷의 바다에 검열과 통제라는 녹슨 칼날을 들이대는 따위의 낡은 행태는 업종을 가릴 것 없이 차고 넘친다. 최근 불거진 정부기관의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 역시 그 출발점은 예서 멀지 않다. 이런 행태가 창의성을 먹고 사는 정보통신이나 콘텐츠 산업의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콘텐츠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던 지난 대선 당시의 정책공약집을 다시 들춰보노라니 허망한 실소마저 나온다. 누가 뭐래도 기업은 첨단 변화의 현장 맨 앞에 서 있는 존재다. “오래된 게 좋은 것”일 때도 있지만, 정권이 보여준 행태는 앞서 내달리는 기업의 놀림감을 넘어, 기업의 발목만 붙잡는 ‘낡은 장애물’에 가깝다.
기업을 직접적으로 ‘망가뜨릴’ 위험요인도 많다. 뭐니뭐니해도 핵심은 인사 개입이다. 흔히 정권이 바뀌고 나면 주요 기업에 자기 사람을 ‘심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번 정권에선 유독 심하다는 게 업계 중평이다. 예전엔 낙하산 인사의 무대가 주로 정부 입김이 먹혀드는 주요 기업들 중심이었던 데 반해, 이제는 그 활동반경이 해당 기업의 자회사 및 계열사, 협력회사 등으로 무한팽창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많다. 민간기업의 인사에 정권의 흔적이 남는 건 기업을 좀먹고 망가뜨리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단어를 최대한 선의로 받아들인다 치자. 엠비정권이 진정으로 비즈니스에 보탬을 주려면, 중요한 건 기회와 시장을 만들어내고 게임규칙을 지키며 플레이어(경제주체)를 키워내는 일이다. 심지어 기업들조차 엠비정권에 선뜻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건 ‘땅 파는 것’을 빼고 딱히 만들어낸 기회와 시장을 찾아보기 힘들고, 게임규칙에 대해선 아예 의식조차 없으며, 민영화나 대형화 등 판에 박힌 레퍼토리뿐 비즈니스의 또다른 축인 수요자(가계)를 살찌우는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는 데 대한 냉혹한 심판이다. “도움이 안 되잖아?”
물론, 이 대목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간섭하는 정부는 싫지만 꼭 필요할 때 적당히 ‘활용’하려 드는 게 기업의 못된 속성이다. 그간의 역사는 양쪽의 음험한 야합이 우리 경제에 커다란 해악을 끼쳤음을 똑똑하게 보여준다.
세상엔 싫어하면서도 점점 닮아가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너무 닮아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일차적으로는 정권의 행태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기업 스스로 제 몸가짐을 바로 세워야 한다. 정권과 기업, 둘이 싫어하면서도 닮아가는 것, 우리 경제엔 최악의 시나리오다.
최우성 산업팀장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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