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을 중심으로 경기 회복세가 급물살을 타면서 풀린 돈을 거둬들이려는 각국의 출구전략 행보도 함께 빨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예상보다 강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부와 한국은행이 ‘출구전략 시기상조론’을 고수하면서, 기준금리 조정을 둘러싼 시기 논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 신흥국들 경기 훈풍 최근 중국은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9%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싱가포르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13.1%로, 199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인도의 올해 성장률을 8.75%, 인도네시아는 5.7%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신흥국들은 잇달아 긴축 정책에 나서고 있다. 인도와 말레이시아는 지난달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올렸고, 싱가포르는 14일 통화가치 절상을 통해 긴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지급준비율을 두 차례에 걸쳐 1%포인트 인상한 데 이어, 곧 위안화 절상과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1분기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7.5%, 전기 대비 1.6%에 이를 것이란 게 한은의 최근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말 정부 전망치(전기 대비 0.8%)의 갑절에 이르는 수치다. 14일에는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2에서 A1으로 상향조정했고, 3월 취업자 수 증가폭은 2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지난 15일 비상경제대책회의 보고서에서 “아직 경제의 불확실성이 크다. 출구전략은 경기와 고용 추이, 주요국 동향 등을 감안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 몸은 신흥국, 마음은 선진국? 정부의 이런 ‘신중론’에 대한 비판 목소리는 최근 들어 한층 커지고 있다. 지난 15일 모건스탠리는 “기준금리 2%는 금융위기 때 설정된 것으로, 현재 거시경제 여건에서는 적절치 않은 수준”이라며 “금리가 너무 오래 낮은 상태로 유지되는 데 따른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노무라증권도 최근 “한국 경제가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버블 형성기와 닮았다”고 경고했다. 일반적으로 저금리 기조를 선호하는 재계 쪽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도 최근 “2분기 이후 잠재성장률 이상의 성장세가 예상되는 만큼 금리 인상 시점을 5~6월 정도로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우리 정부와 통화당국의 태도에 대해 ‘경기회복 속도는 신흥국 수준인데, 출구전략에서는 선진국과의 공조를 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김중수 한은 총재를 임명하는 자리에서 “출구전략도 각국이 공조해야 한다”고 당부했고, 김 총재는 “세계적인 위기 극복을 위해 공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화답했다.
에스시(SC)제일은행의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는 “김 총재의 ‘국제공조’는 미국 연준과의 공조만 의미하는 것 같다”며 “한국은 이머징 국가인데, 왜 경제 상황이 다른 미국과 통화정책을 공조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은 최근 경기가 나아지고는 있지만 실업률이 여전히 10%에 육박하고, 일본과 유럽은 미국보다 경기 회복세가 더 지지부진하다. 장보형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도 “저금리만 고집하다가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신흥국의 버블 가능성에 대해 외국계 기관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준금리 인상을 미루는 것은 지방선거 전에 가계부채나 부동산 거품 문제가 불거질 것을 우려하는 측면도 강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금리 인상에 따른 환율 하락으로 수출 여건이 나빠지는 것도 정부로서는 내키지 않는 상황이다. 한 민간연구소 연구원은 “모든 정책을 성장률이 좋아지는 쪽으로만 몰아가는 모습인데, 이는 경제에 대한 중장기적 관리보다는 가시적인 단기 성과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종원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지금까지 금리를 인상한 신흥국들은 모두 물가나 부동산이 불안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물가와 자산 다 안정적인 모습”이라고 반박했다. 또 그는 “지금은 일반적인 경기 사이클이 아니라 금융위기의 뒤끝이기 때문에 좀더 다지고 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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