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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나랏빚, 선진국 기준땐 정부발표치 3배”

등록 2010-03-03 21:40수정 2010-03-03 21:49

이재은 경기대 교수
이재은 경기대 교수
[재정 건전성 경보음] 이재은 경기대 교수 인터뷰




“MB(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 정책’과 불요불급한 ‘4대강 사업’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급증을 부채질하면서 재정위기 위험성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이재은 경기대 교수(재정학)는 지난 3월1일 경제개혁연구소가 연초 PIGS(포르투갈·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의 재정위기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재정위기 가능성과 대책을 듣기 위해 마련한 대담에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현 정부가 종부세, 법인세, 소득세를 대상으로 한 부자감세를 강행하고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 4대강 사업과 같은 불요불급한 지출을 확대하면서 재정적자를 늘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인해 앞으로 경기회복이 되도 세수가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재정위기를 극복할 가능성까지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한국재정학회장과 한국지방재정학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희망제작소 부설 자치재정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재정학계의 중진 학자다.

-정부에서는 우리는 아직 재정위기를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고 하는데?

=정부발표를 보면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 국가채무가 366조원으로 GDP(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이 35.6%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치인 70%대의 절반 수준이다. 일단 수치만 놓고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선진국은 국가채무 산정기준도 다르고 경제적 여건도 서로 다른 상황에서 수치만 놓고 단순 비교하는 것은 국민들을 현혹하는 것이다. 언론도 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와 선진국의 국가채무 산정방식이 어떻게 다른가?

=국제적으로 국가채무 산정기준은 다양하다. 유엔에서는 SNA(국민소득계정) 기준을 사용하는데 2008년에 신SNA 기준에 대한 시안(draft)을 발표했다. IMF(국제통화기금)에서는 GFSM(정부회계계정) 기준을 사용하는데 2001년에 변경이 됐다. 우리는 아직 이런 국제적인 국가채무 산정기준을 따르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회계기준이 현금주의인데 선진국은 발생주의다. 또 국가채무에 포함하는 게 마땅한 상당수 공기업의 부채도 빠져있다. 우리정부는 2011년부터 선진국과 같은 회계기준으로 바꿀 계획이다. 또 정부가 말하는 채무(debt)의 개념은 선진국에서 말하는 부채(liability)보다 포괄범위가 좁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공기업 부채는 국가부채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국제기준이라고 강조했는데.

=공기업의 부채를 국가채무에 포함시킬지 여부는 해당 공기업의 역할이 뭐냐에 달려있다. 법에 의해 정부가 공기업 부채에 대해 책임을 진다면 그 이름에 상관없이 국가채무에 포함시키는 것이 맞다. 하지만 공기업의 자체 수입이 총수입의 50%를 넘는 등 시장적 기능이 크다면 국가채무에서 제외해야 한다. 따라서 나라마다 세부적으로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공기업은 도로·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 등 대규모 국책사업을 사실상 정부를 대신해 떠맡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예로 지난해 정부가 4대강 관련 사업비를 수자원공사에게 떠넘겨 논란이 컸다. 정부가 국가채무로 잡히지 않기 위해 편법을 동원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것은 국가채무에 포함시키는 것이 옳지 않을까?

=정부가 사업을 할 때 비용과 편익을 비교해서 경제성을 평가하는데, 경제성이 없는 사업을 강행할 경우 논란을 피하기 위해 비용의 일부를 공기업에 떠넘기는 경우가 있다. 수자원공사의 경우도 본래 기능이 4대강 사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정부가 8조원의 관련 사업비를 떠넘겼다. 이후 채무상환을 어떻게 할지 궁금하다. 궁극적으로 조세수입으로 부담할 가능성이 크다. BTL(민간투자사업)로 지은 인천공항철도를 정부 대신 철도공사가 인수한 것도 대표적 사례다. BTL이 부실화하면 결국 국민부담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를 눈가림하기 위해 공기업을 이용하여 국민의 비판을 모면하려는 얄팍한 수법이다.

-선진국 기준으로 하면 우리나라의 실제 국가채무는 어느 정도나 될까?

=재정학회가 국회에 용역결과로 제출한 자료를 기준으로 하면 2007년 말 기준 국가부채는 정부가 발표한 299조원의 3배 정도 되는 863조원으로, GDP의 76.3%에 달한다. 이는 OECD 평균치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최근 일부 학자나 국회의원은 우리나라 국채채무를 1000조~1500조로 추정하는 자료를 낸 적도 있다. 이처럼 수치가 다른 것은 정부가 관련수치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채무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과소평가하여 감세나 적자재정을 강변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우리나라와 OECD 평균치가 같다면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같은 70% 수준이라도 내용이 전혀 다르다. 유럽은 소득수준도 높고 복지수준은 우리의 2배다. 우리는 소득수준 복지수준 모두 낮은데도 국가채무 비율이 비슷한 것은 큰 문제다. 우리나라의 재정이나 국가채무 사정을 감안할 때 선진국과 같은 복지국가로 가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율이 선진국에 비해 낮으니, 세금을 좀 더 걷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유럽의 조세부담율은 30~40%로 우리의 22%대보다 훨씬 높다. 우리도 유럽처럼 세금을 많이 걷어 복지수준을 높이는 방법도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선심성 감세는 쉽지만 증세는 정권의 성패를 걸어야 한다. 납세자가 전국민의 3%에 불과했던 종합부동산세 때문에 이명박정권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를 무리없이 하려면 소득수준이 선진국처럼 3만~4만달러 수준으로 올라가야 한다. 지금처럼 2만달러 수준에서는 쉽지 않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가 세율을 인하한 상태에서 당장 세율인상은 시도할 수 있겠는가? 소득이 올라가지도 않는데 세금만 더 걷는다면 저소득층이 가장 큰 고통을 받는다.

또 세계화의 진전으로 모두들 조세부담을 낮추는 추세다. 세율을 높이면 돈이나 사람이 세금이 적은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는 우리나라 소득세율이나 법인세율이 높지도 않은데 감세를 강행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재정위기를 우려해서 세금을 더 걷게 된다면 틀림없이 법인세나 소득세 같은 직접세 대신에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를 높이려 할텐데, 이 또한 저소득층에게 불리하다.

-우리나라는 민간기업의 부채라도 경제위기 시에는 국가부채로 전이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는 것 같다. 지난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때 결국 정부가 은행의 해외부채에 지급보증을 서지 않았나?

=맞는 얘기다.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미칠 경우 민간기업의 부실이 국가부담으로 이전될 수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단순히 국가채무 수치만 놓고 위험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공기업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OECD국가 중에서 우리나라처럼 공기업의 수가 많은 나라는 별로 없다. 또 우리나라 공기업은 시장논리보다는 정치논리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의 재정상태가 나쁘면 위기시 재정확대를 통한 대응여력도 떨어질 수 밖에 없을텐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초래된 원인이 바로 그 때문이다, 일본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0%를 넘는다. 금년도에도 정부 빚을 갚기 위한 공채 발행액이 조세수입보다 많을 정도다. 게다가 국채이자가 예산의 20%를 넘어섰다. 한마디로 재정여력이 없는 것이다. 토건족을 위한 쓸데없는 공공토목사업을 확대하여 경기를 부양하고 감세를 추진했던 1990년대 일본의 재정정책의 결과인 것이다. 우리 정부가 타산지석을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국가채무가 지난 한햇동안만 57조원이 늘면서 증가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우려가 많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93조6천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1년만에 4배로 증가한 것이다.

=맞는 지적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지난 한햇동안만 5.4%p가 뛰었는데, 이것은 위험 수준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채무가 급증했다는 지적이 많다.

=재정적자가 쌓이면 결국 국가채무가 늘어나게 되는데, 지난해 우리나라의 재정적자가 57조원에 달한다. 이 중에는 실업구제나 경기진작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로 인한 것도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이나 4대강사업 같은 쓸데없는 짓으로 인한 재정적자도 상당부분에 이른다. 4대강 사업 예산만 22조원에 달한다고 하지 않나. PIGS나 선진국의 재정적자가 급증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대처과정에서 부실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경기를 살리기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번 세계 금융위기 국면에서 외국의 재정적자와 우리나라의 원인은 상당히 다르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이 국가채무 증가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을까?

=이명박 정부의 집권 5년간 총 감세 효과는 83조원 정도로 예상되었었다. 정부가 일부 법인세와 소득세의 감세를 유보했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 5년간 예상 재정적자도 180조원 정도였는데, 만약 정부가 감세를 하지 않았다면 재정적자가 100조원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정부가 앞으로 복지 확대, 통일 대비 등 돈 쓸 곳은 많은데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재정 여건은 안 좋아지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을 전망이다. 일부 민간경제연구소들은 30~40년 이후 재정위기 현실화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는데?

=저출산이나 고령화는 공통적으로 우려되는 요인이지만 우리나라는 진행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더 큰 문제이다. 게다가 앞으로 정부의 역할을 더욱 키워야 하는데 지금의 재정여력으로는 쉽지 않다. 고용문제만 해도 사회적 일자리를 늘리려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향후 국가채무를 정확히 전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어려운 것이 성장률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는 애초 2012년으로 잡았던 균형재정 달성시점을 2014년으로 늦추면서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5%로 가정했다. 하지만 조세연구원조차 가능성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정부는 균형재정을 말하면서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조세 수입을 어떻게 늘리겠다는 얘기가 없다. 결국 공기업 매각, 민영화를 통해 국가채무를 갚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는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줘서 생긴 적자를 공기업을 팔아서 메우겠다는 것과 같다. 공기업매각수입은 국가채무상환이나 국민전체에게 도움이 되는 곳에 사용되어야 하지 않겠나.

-정부도 이런 사정을 알텐데, 아직 재정위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가 재정 문제를 자꾸 덮으려는 것은 4대강 살리기와 같이 불요불급한 사업에 대한 반대논리를 약화시키거나 앞으로도 감세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재정위기 방지를 위해 필요한 대책은?

= 우선 재정규율을 강화하는 재정 건전화 대책, 지출구조 합리화 노력 등이 필요하다. 세수를 늘리기 위해 세율을 높이고 세원 개발과 탈루세원 대책 등도 필요하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개인의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나도 학교선생이지만 군인과 공무원, 교원들의 연금개혁을 실시해 부담금과 급여금의 비례관계를 높여 잠재적 국가채무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재정지출 억제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 성향으로 볼 때 노동 쪽으로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면 임금인상 억제 등이다. 이미 공무원 임금은 2년째 동결하지 않았나. 앞으로 복지지출 삭감 가능성도 높다. 일반적으로 자본축적의 위기인 불황과 사회통합의 위기인 빈부격차가 재정위기를 초래한다고 본다. 재정위기 대책으로 임금을 줄이고 복지수준을 낮추면 거꾸로 사회통합 위기가 심화되기 때문에 위험하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급증의 요인이라고 지적한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에도 수정이 필요할텐데.

=정부의 감세정책이 재정적자폭을 키우고 재정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을 낮추었다. 영국, 아일랜드, 아이슬랜드 등은 이번 위기국면에서 오히려 증세정책을 썼다. 그 외에도 재정위기 때문에 부가가치세나 탄소세의 세율을 높이는 국가들이 많이 있다. 선진국 중에는 위기국면에서 감세를 한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중·저소득층의 세율만을 인하한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부자들을 위해 소득세만이 아니라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등을 무차별적으로 감세한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2008년 현재 177조원에 이르는 공기업 부채에 대한 대책도 필요할텐데. 정부도 공기업 경영평가에 부채 상황을 반영하기로 했다.

=시장성 있는 공기업의 부채는 시장을 통해 해소해야 한다. 특히 공기업의 경영효율을 높여 요금인상을 통한 국민부담증가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공기업에 부담을 떠넘긴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은 언젠가는 국민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공기업의 경영 부실 요인을 없애려면 우선 낙하산인사와 같은 정치적 요인을 철저히 배제하고 임기 중 채무증가요인을 철저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렇다고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공익성은 물론이고 경제위기나 재정위기 국면에서 사회안전망역할을 한다는 점도 경시해선 안된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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