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진화 기부 넘어 참여로
[한겨레 특집] 나눔경영
#1 “휴대전화 하나가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 몰랐어요.”
시각장애인 이기남(40)씨는 지난해부터 휴대전화로 책을 ‘본다’. 음성도서관을 찾아가지 않고 집에서 편안하게 음성도서를 내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늘 전화로만 통화하던 가족들과 문자메시지도 주고받는다. 비록 딱딱한 기계음이지만 휴대전화가 친절하게 내용을 읽어준다. 엘지(LG)는 2006년부터 ‘책 읽어주는 휴대전화’를 시각장애인들한테 제공하고 있다. 엘지전자가 단말기를 만들고, 엘지상남도서관에서 음성도서 콘텐츠를 제공하면, 엘지텔레콤은 관련 애플리케이션과 무료 통신 서비스를 하는 방식이다. 휴대전화에는 모든 메뉴와 문자메시지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여러 특수기능을 담았다. 엘지텔레콤 관계자는 “통신과 단말기, 콘텐츠 사업이 협업해야만 가능한 서비스여서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다.
#2 매일유업과 씨제이(CJ)제일제당은 소비자가 200여명뿐인 특별한 제품을 만든다. 선천성대사이상 질환을 앓는 아이들이 고객이다. 수만명에 한명꼴로 발생하는 이 질환은 저단백 음식을 먹지 않으면 장애가 생기거나 숨질 수 있다. 매일유업은 10년째 저단백 특수분유를, 씨제이는 올해부터 저단백 햇반을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매일유업의 경우, 생산한 특수분유의 10%만 판매하고 나머지는 폐기한다. 분유 제조라인은 한번 가동하면 최소 2만통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씨제이의 저단백 햇반의 판매가격은 1800원, 연간 매출액은 5000만원가량이다. 하지만 씨제이는 이 제품을 개발하는 데만 8억원을 들였다. 씨제이 관계자는 “우리도 저단백 기술이 있는데 국내 환자들이 수입산을 쓰고 있는 현실에 대한 책임감으로 시작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이웃돕는 기부 위주에서
맞춤형 봉사로 질적 도약 기업 경영성과와 연계해
‘착한 이익’ 보는 전략까지 기업 69% ‘사회공헌 명문화’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은 이젠 ‘지속가능한 기업’을 위한 필수적인 경영 전략의 하나가 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집계를 보면, 국내 기업들은 지난해 기업당 평균 103억원, 경상이익의 4.0%를 사회공헌 비용으로 지출했다. 5년 전 평균 54억원(경상이익의 1.9%)을 지출한 것에 견주면 갑절로 늘어난 것이다. 사회공헌활동을 명문화하고(68.9%), 관련 인력이나 부서를 두는 한편(86.5%), 전담 예산을 배정(83.9%)하는 것도 대세가 됐다. 소비자들도 사회공헌활동이 우수한 기업의 제품은 비싸더라도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전경련 조사)할 만큼 의식과 요구 수준이 성숙해졌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일회적 시혜 사업에서 벗어나 상시적인 경영 전략이자 기업 활동의 하나로 자리매김을 한 셈이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한 단계 도약하고 있다. 임직원 일동이 이웃돕기 성금을 내거나 양로원을 찾는 건 옛날 얘기다.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 고문은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이 양적 성장단계에서 질적 도약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며 “현금 기부 중심에서 현장 참여형으로,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는 전략적 사회공헌 형태로 진화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대기업들이 ‘프로보노’(pro bono) 활동에 적극 뛰어든 것이다. 프로보노는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라는 라틴어 문구의 약어인데, 각자의 재능과 특기를 활용한 봉사활동을 일컫는다. 에스케이(SK)그룹은 최근 ‘SK프로보노’ 자원봉사단을 꾸렸다. 구성원은 변호사·회계사 등 주로 법률·재무·인사·마케팅 분야에서 전문 자격과 실무능력을 갖춘 이들이다. 시민사회단체 등 비정부기구(NGO)나 사회적기업과 연계한 컨설팅이 주된 임무다. 에스케이 관계자는 “법률 자문과 경영 컨설팅, 세무상담, 판매관리시스템 구축 등 조직 운영에 꼭 필요한 경영적 업무를 교육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사회봉사단은 지난 10월 22개 계열사의 100여개 전문봉사팀 2500여명이 참여한 대규모 ‘프로보노’ 봉사활동을 펼쳤다. 법률·의료·통역 등 전문 영역뿐 아니라 사진찍기, 벽화그리기, 웃음치료, 스포츠마사지, 마술·요리·제빵 등 수십가지의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활동을 벌였다.
사회공헌을 기업 경영성과와 연계하는 ‘전략적 사회공헌’ 역시 새로운 화두다. 쉽게 말해 ‘착하게 이익을 보는’ 전략인데, 이미 국외 선진기업들 사이에선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국내에선 아직까지 뚜렷한 성공 모델이 없다. 노한균 국민대 교수(경영학)는 “사회공헌을 통한 기업의 비용 지출이 사회적으로 득이 될 뿐 아니라 기업에도 경제적 이득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선 기업뿐 아니라 정부의 관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미국 인텔은 2007년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나이지리아의 200개 학교에 ‘클래스메이트’란 저가 노트북을 개발해 공급했다. 제품 가격은 개당 320달러로 전액 나이지리아 정부가 지원했다. 인텔은 노트북과 동시에 무선 인터넷 환경과 교사용 화이트보드와 노트북을 연계한 시스템도 제공했다. 저가 노트북 사업으로 인텔은 적잖은 수익을 낸 동시에 아프리카 시장에서 자사 제품과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효과를 봤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지난 10월 휴대용 초음파 진단기를 내놨다. 병원 등 의료시스템이 낙후된 지역 환자들을 위한 제품이다. 개당 1만달러가 넘는 고가 제품인데, 핵심 기능만 살려 가격을 10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 조희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면서도 경영성과를 올리는 전략적 사회공헌 모델이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도 사회공헌활동을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비용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각자의 제품과 서비스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맞춤형 봉사로 질적 도약 기업 경영성과와 연계해
‘착한 이익’ 보는 전략까지 기업 69% ‘사회공헌 명문화’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은 이젠 ‘지속가능한 기업’을 위한 필수적인 경영 전략의 하나가 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집계를 보면, 국내 기업들은 지난해 기업당 평균 103억원, 경상이익의 4.0%를 사회공헌 비용으로 지출했다. 5년 전 평균 54억원(경상이익의 1.9%)을 지출한 것에 견주면 갑절로 늘어난 것이다. 사회공헌활동을 명문화하고(68.9%), 관련 인력이나 부서를 두는 한편(86.5%), 전담 예산을 배정(83.9%)하는 것도 대세가 됐다. 소비자들도 사회공헌활동이 우수한 기업의 제품은 비싸더라도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전경련 조사)할 만큼 의식과 요구 수준이 성숙해졌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일회적 시혜 사업에서 벗어나 상시적인 경영 전략이자 기업 활동의 하나로 자리매김을 한 셈이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한 단계 도약하고 있다. 임직원 일동이 이웃돕기 성금을 내거나 양로원을 찾는 건 옛날 얘기다.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 고문은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이 양적 성장단계에서 질적 도약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며 “현금 기부 중심에서 현장 참여형으로,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는 전략적 사회공헌 형태로 진화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대기업들이 ‘프로보노’(pro bono) 활동에 적극 뛰어든 것이다. 프로보노는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라는 라틴어 문구의 약어인데, 각자의 재능과 특기를 활용한 봉사활동을 일컫는다. 에스케이(SK)그룹은 최근 ‘SK프로보노’ 자원봉사단을 꾸렸다. 구성원은 변호사·회계사 등 주로 법률·재무·인사·마케팅 분야에서 전문 자격과 실무능력을 갖춘 이들이다. 시민사회단체 등 비정부기구(NGO)나 사회적기업과 연계한 컨설팅이 주된 임무다. 에스케이 관계자는 “법률 자문과 경영 컨설팅, 세무상담, 판매관리시스템 구축 등 조직 운영에 꼭 필요한 경영적 업무를 교육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사회봉사단은 지난 10월 22개 계열사의 100여개 전문봉사팀 2500여명이 참여한 대규모 ‘프로보노’ 봉사활동을 펼쳤다. 법률·의료·통역 등 전문 영역뿐 아니라 사진찍기, 벽화그리기, 웃음치료, 스포츠마사지, 마술·요리·제빵 등 수십가지의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활동을 벌였다.
사회공헌을 기업 경영성과와 연계하는 ‘전략적 사회공헌’ 역시 새로운 화두다. 쉽게 말해 ‘착하게 이익을 보는’ 전략인데, 이미 국외 선진기업들 사이에선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국내에선 아직까지 뚜렷한 성공 모델이 없다. 노한균 국민대 교수(경영학)는 “사회공헌을 통한 기업의 비용 지출이 사회적으로 득이 될 뿐 아니라 기업에도 경제적 이득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선 기업뿐 아니라 정부의 관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미국 인텔은 2007년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나이지리아의 200개 학교에 ‘클래스메이트’란 저가 노트북을 개발해 공급했다. 제품 가격은 개당 320달러로 전액 나이지리아 정부가 지원했다. 인텔은 노트북과 동시에 무선 인터넷 환경과 교사용 화이트보드와 노트북을 연계한 시스템도 제공했다. 저가 노트북 사업으로 인텔은 적잖은 수익을 낸 동시에 아프리카 시장에서 자사 제품과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효과를 봤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지난 10월 휴대용 초음파 진단기를 내놨다. 병원 등 의료시스템이 낙후된 지역 환자들을 위한 제품이다. 개당 1만달러가 넘는 고가 제품인데, 핵심 기능만 살려 가격을 10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 조희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면서도 경영성과를 올리는 전략적 사회공헌 모델이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도 사회공헌활동을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비용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각자의 제품과 서비스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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