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국내외 중소 알짜기업 인수 주력
대형 M&A 실패 ‘반면교사’…안전투자 강화
대형 M&A 실패 ‘반면교사’…안전투자 강화
#1 엘지그룹은 이달 초 미국의 카메라·필름 업체 이스트만코닥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부문을 인수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코닥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내놓은 매물을 사들이기로 한 것이다. 오엘이디는 전세계 정보기술업체가 상용화에 열을 올리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다. 엘지그룹 관계자는 “코닥이 오엘이디 관련 원천기술을 여럿 보유한 것으로 안다”며 “미래의 핵심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인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2 삼성전자는 지난달 발광다이오드(LED) 텔레비전 금형을 납품하는 협력업체 에이테크솔루션의 지분 15.9%를 263억원에 인수했다. 이 회사 지분을 일본의 한 투자회사가 사들이려 한다는 소문이 돌자 선수를 친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경쟁력 있는 핵심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10월에는 미국 퓨전아이오(IO)에도 수백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했다. 차세대 저장장치(SSD) 전문업체인데, 지난해 미국 샌디스크와의 빅딜이 무산되자 그 대안으로 핵심 기술을 보유한 강소기업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대기업들이 수조원대 대형 매물보다는 국내외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스몰딜’에 주력하고 있다. 작지만 강한 전문기업을 사들여 주력사업의 경쟁력을 보완하거나 신사업 기회를 엿보는 디딤돌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경기회복의 불확실성이 여전한데다 대형 인수합병이 이른바 ‘승자의 저주’에 휘말리면서 실속형 투자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엘에스(LS)그룹은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해 스몰딜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 10월 스위스에 본사를 둔 지능형빌딩시스템(IBS) 전문업체의 한국법인을 인수했고, 앞서 9월에는 중국 전력선 전문업체를 200억원에 사들였다. 엘에스는 이밖에 공장자동화 전문업체와 전력선 통신기술업체 등 올해 들어서만 4~5곳의 국내외 중소 전문기업을 사들였다. 엘에스그룹의 한 임원은 “규모는 작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까운 경쟁력 있는 회사를 인수해 주력사업 역량과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려는 전략”이라며 “핵심 기술이 있는 알짜 연관기업은 필요하면 더 인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에스(GS)그룹은 지난 5월 종합상사인 ㈜쌍용(현 지에스글로벌)을 인수한 뒤, 백화점 등 일부 유통사업의 분리매각을 저울질하고 있다. 지에스그룹의 한 계열사 관계자는 “성장세가 한계에 이른 사업은 매각 등을 통해 구조조정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 성장 기회가 큰 자원개발과 신재생에너지 등에 그룹 역량을 투입하기 위한 프로세스”라고 말했다.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금융위기 이후 규모보다는 기술과 네트워크를 갖춘 기술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선전하는 모습을 보이자, 대기업들이 인수합병 시장에 나온 알짜 중소기업 사냥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라고 평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사냥이 활발해지면서 2차전지·태양광 등의 분야에서 ‘먹잇감’ 후보로 지목된 업체들의 주가 또한 연일 출렁이고 있다.
국내 대형 인수합병이 줄줄이 ‘승자의 저주’에 휘말린 것도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의 투자전략팀장은 “매물들이 많은 시기여서 이전 같으면 대기업들이 빅딜을 통해 외형 성장에 앞다퉈 나섰겠지만, 경기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한데다 최근 대형 인수합병이 잇따라 실패하자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커진 것 같다”고 풀이했다. 수조원대의 매물을 인수한 기업들 대부분이 현금 유동성 문제로 재매각이나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안전 투자’ 경향이 더 강해졌다는 것이다.
이한득 엘지(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005년 이후 기업들의 투자 패턴을 보면, 대규모 설비투자 대신 연구개발과 지분투자를 늘리면서 ‘확장’보다는 ‘경쟁력’으로 키워드가 옮아가는 양상”이라며 “대규모 차입을 감수하면서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는 방식은 퇴조 양상이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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