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최대 담합과징금 부과’ 예고한 공정위
위원장의 소신인가? 코드 맞추기인가?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은 13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초청강연에서 “산업계에선 공정위가 카르텔(짬짜미)을 과도하게 제재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미국 경쟁당국이 5~6건의 역외 적용으로 부과한 과징금이 1조8000억원에 이르지만 공정위의 역대 누적 과징금은 1조3000억원 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사상 최대 과징금을 예고된 액화석유가스(LPG) 업계의 불만을 겨냥한 발언이다.
그는 “특히 담합은 시장경제의 근간인 가격기능에 손을 대는 행위로 시장의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강한 어조로 기업들의 반발을 정면 반박했다. 공정위는 엘피지 판매가격을 담합한 6개 업체에 모두 1조3000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심의를 진행하고 있다. 공정위는 전날 열린 전원회의에서 “쟁점이 많고 법리적 판단이 복잡하다”며 최종 결정을 2주뒤로 미뤘다.
정 위원장이 단호한 소신을 거듭 밝혔지만 내부적으로는 당혹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공정위의 조사에 대한 기업들의 불만이 ‘1조원대 과징금’을 계기로 노골적으로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엘피지 업체에 대한 제재 결정을 연기한 것도 이런 부담이 작용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 위원장 취임 이후 공정위의 핵심 정책은 ‘대기업 규제’에서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 감독으로 급격히 옮아갔다. 지금까지 우유·소주·밀가루·주유소·음료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하게 얽힌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조사를 했거나 진행 중이다.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품목들도 포함돼 있다.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친서민 정책’에 발을 맞추려 무리하게 기업들을 몰아붙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공정위는 ‘코드 맞추기’란 비판에 펄쩍 뛴다. 짬짜미 조사는 공정위 본연의 업무이자 ‘답합 행위는 시장경제의 독’이라는 위원장의 평소 소신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다. 정 위원장은 이날 전경련 강연에서 “엘피지 업계의 과징금 통보액보다 실제 과징금은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에 충분한 방어 기회를 주고, 정부의 행정지도에 따른 불가피한 담합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재계에서는 엘피지 업체에 대한 제재 결과가 향후 공정위의 조사 강도와 수위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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