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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직종·직무차별 없애야 ‘출산뒤 경력단절’ 없다

등록 2009-10-27 20:04

직장 여성들에게 출산과 육아는 최대 고민거리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신수경씨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구로동 자신의 일터에서 안터넷과 전화를 통해 고객들과 상담을 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직장 여성들에게 출산과 육아는 최대 고민거리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신수경씨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구로동 자신의 일터에서 안터넷과 전화를 통해 고객들과 상담을 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실업급여 100만영 시대 고용정책 판을 바꾸자]
⑨ 여성고용 복병 ‘경력 단절’
중견 여행사인 ‘여행박사’에서 일하는 신수경(34)씨는 다음달 육아휴직을 앞두고 있다. 지난 2007년 첫 아이를 낳을 때 그는 산전 후 휴가만 썼다. 산전후휴가 90일에 연차를 더해 넉 달 동안 집에서 쉰 신씨는 “휴가를 마치고 회사가 다시 나오라고 했을 때 기뻤다”고 말했다.

당시 회사는 그를 위해 출근시간을 한시간 뒤로 미루는 ‘탄력근무시간제’를 제안했다. 그 덕에 서울 노원구에 사는 신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뒤 구로구에 있는 회사에 오전 10시까지 올 수 있었다. 회사에 마련된 여성휴게실도 큰 도움이 됐다.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기 위해 미리 젖을 짜 모아놓는 유축을 해야 하는데 휴게실은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그는 “다른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공간이 없어서 할 수 없이 화장실에서 유축을 했다”며 “나 같으면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의 배려 때문에 일을 다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여성 고용률 30대 출산·육아기 기점 ‘폭락’
남녀차별 없애고 경력 쌓을 기회 보장해야
“정부, 실효성 있는 고용개선조치 강화해야”

반면 회사는 대체 인력과 시설 등 비용이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조영우 여행박사 아이티(IT)사업본부장은 “투자”라고 잘라 말했다. 조 본부장은 “사실 여름과 겨울 성수기를 거치면 웬만한 일은 신입 직원들도 다 해내게 된다”고 했지만, “숙련된 직원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했다. 남성 직원들도 탄력근무시간제와 휴게실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을 반겼다고 한다. 조 본부장은 “앉아있다고 해서 생산성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자율적으로 일할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자녀를 둔 여성이 일하기에 어려움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신씨는 운이 좋은 쪽에 들어간다. 대부분의 여성은 여성휴게실이나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탄력근무시간제’의 혜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신씨와 같은 30대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기에 해고의 위험에 직면한다.

우리나라의 여성 고용률은 출산을 전후해 20~40%가 떨어진다. 그러나 한번 떨어진 고용률은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개 출산 휴직을 경험한 여성들은 경력이 단절되면서 복직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일정한 반면, 한국은 30대에 큰 폭으로 떨어지며 엠(M)자형 곡선을 그린다. 일반 여성 직장인들이 출산 전후 휴직과 경력 단절에서 비롯된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악순환의 고리에 놓인 것이다.



여성의 연령별 경제활동 참가율
여성의 연령별 경제활동 참가율
그렇다고 신씨처럼 회사의 ‘배려’에만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는 ‘입구’부터 차별을 없애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한다. 김혜원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는 여러 대책이 있지만, 최초 직무나 직종부터 발전 전망이 있는 곳에 여성이 배치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기업 컨설팅’을 한 장명현 노무사도 “남성은 회사에 들어가서 수직적 수평적으로 업무를 배우며 직무를 심화시키면서 관리직으로 올라가는데, 여성들은 독하고 매정하게 하지 않는 이상 어느 순간에 경력이 단절된다”고 말했다.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안정적인 경력을 개발할 기회를 얻지 못한 탓에, 여성들은 출산·육아기나 불황시에 일자리에서 물러나기를 더 요구받는다는 것이다. 여성부가 밝힌 ‘2009년 상반기 여성의 고용동향’을 보면 불황이 닥친 올해 20~30대 여성 취업자는 지난해와 견줘 21만1000명이나 감소했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취업을 원하는 여성 가운데 대졸여성이 80%가 넘는데, 이들에게 돌봄서비스나 단순판매직 등만 맡으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남성이 지배하는 직종에서도 이들을 뽑게 해야한다”고 제안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저출산·고령사회에 대응한 여성인적자본의 효율적인 활용방안’에서도 “한국의 여성 고학력자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미약한 수준”이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달러 수준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성 인적 자본을 충실히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아직 미흡하다. 김 연구위원은 “여성의 고용을 촉진하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는 인센티브나 벌칙이 없는 제도이기 때문에, 실제 작동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노동부가 지난 2006년 도입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의 올해 현황을 보면,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대상인 500인 이상 민간기업과 공공기관 1607곳 가운데 71.7%에 달하는 1152곳은 임원급 여성이 없었다. 임원보다 낮은 직급까지 포함하는 여성관리자가 아예 없는 기업도 466곳(29%)에 달했다.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는 동종업종 여성 고용비율이 평균의 60%에 미달하는 기업에 대해 여성고용목표 등을 담은 고용관리개선 계획을 수립해 이행하도록 하는 제도다. 또 여성이 고용에 있어 불평등을 당하는 것을 막아야 할 ‘적극적 고용개선위원회’를 노동부는 올해 10월 ‘고용정책심의회’에 통폐합시켰다.

이지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여성본부 부장은 “공기업 공채 등을 제외하고는 여성들이 여전히 고용 차별을 당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를 강화하는 등 실효성 있는 정책 대안들을 정부가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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