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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말 바꾼 이성태 총재, 정부 눈치 보나

등록 2009-10-18 19:56수정 2009-10-18 21:08

이성태 한은 총재
이성태 한은 총재
“금융완화 심각”→“당분간 기조 유지”
G20 유치 뒤 “출구전략도 국제공조해야” 압박




지난달 10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뒤 채권시장에서는 시장 금리가 급등했다. 이성태 한은 총재가 “지금 금융완화 강도는 상당히 강하다”며 조만간 기준 금리를 올릴 뜻을 내비친 탓이었다. 하지만 10월 금통위가 열린 지난 9일에는 채권 금리가 일제히 급락했다. 이 총재가 “당분간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며 ‘조기 인상’ 가능성을 일축한 결과였다.

한은이 경기 상황에 따라 조금씩 태도를 바꾸긴 하지만, 이렇게 큰 폭으로 ‘말바꾸기’를 한 것은 이 총재 취임 뒤 거의 처음이다. 한 채권 딜러는 “10월 금통위 뒤 그동안 시장이 이 총재에 대해 가져왔던 신뢰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9월과 10월 금통위 사이에 부동산 가격과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주춤해지고 국내외 경제의 더블딥(이중침체) 우려가 부각되는 등 일부 상황 변화가 있긴 했지만 경기회복세 지속, 부동산 시장 불안이라는 큰 흐름은 바뀐 게 없다. 한 채권 애널리스트는 이 총재의 태도 변화를 “정치논리가 작용한 탓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해석했다. 강운태 의원(민주당)도 지난 15일 한은 국정감사에서 “한은 총재가 평소 소신과는 다르게 대통령과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에 의해 사실상 정치적 영향을 받고 있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은 금리 인상이 이슈로 떠오른 최근 몇 달 동안 줄기차게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금리 인상을 반대해왔다. 특히 내년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이후로는 더욱 강경해진 것으로 보인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요즘 정부 쪽 인사들을 만나면 ‘G20 의장국으로서 국제공조를 선도해야 하는데 다른 나라보다 먼저 금리를 올리면 되겠느냐’고 말한다”며 “정상회의 의장국이라는 사실에 취해 정책 실기를 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는 지난달 열린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등에서 “출구전략 논의는 시기상조이고, 국제공조를 통해 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표명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국가원수가 국제 무대에서 말한 내용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하지만 국제회의에서 이야기되는 공조의 핵심은 통화정책 쪽이 아니라 대형 은행에 대한 공적자금 회수 같은 문제”라며 “우리 정부는 출구전략 공조를 금리와 연결시켜 한은의 운신 폭을 좁히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박종규 경제분석실장은 18일 <경제동향&이슈>에 실은 ‘G20 정상회의와 출구전략의 국제공조’라는 글에서 “국가간 정책 공조가 모두에게 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조 약속을 지키느라 손발이 묶인다면 자국 여건에 맞는 정책을 적기에 펴지 못해 악영향이 초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실장은 1980년대 일본이 미국과의 ‘저금리 유지’ 합의 때문에 금리 인상을 하지 못해 결국 자산 거품을 초래한 사례를 들며 “출구전략의 시기와 내용 선택에 대해서는 개별 국가의 재량권을 충분히 허용하는 유연한 형식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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