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금융’ 사업 체계
대기업·은행 기부 10년간 이어질지 우려
대출자와 밀접한 상담 가능한 인력 부족
12월부터 사업 시작…무리한 목표도 걱정
대출자와 밀접한 상담 가능한 인력 부족
12월부터 사업 시작…무리한 목표도 걱정
정부가 지난 17일 발표한 ‘미소금융 방안’은 앞으로 10년 동안 2조원 규모로 저소득·저신용 계층에게 창업·사업자금을 무담보로 빌려주겠다는 내용을 줄기로 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이는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중도실용 서민정책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업은 금융소외자들이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해 대부업체나 불법 사금융을 찾아야 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취지에는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개선돼야 할 문제점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재원 조달이 재계의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신용대출) 사업에 필수적인 인력을 확보할 방안이 미흡하다는 점 등 사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재원 확보, 정권 따라 춤춰서는 안 돼 이번 사업은 대기업·은행 기부금 1조3000억원, 휴면예금 7000억원으로 재원을 조달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배상근 경제본부장은 “참여 의사를 밝힌 기업들이 합의해서 정한 금액이 10년에 1조원”이라며 “연말까지 1000억원은 안정적으로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경련 쪽은 참여 기업들의 수나 기부액수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은행권은 논의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사업 발표 당일(17일) 회장님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며 “은행들과는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가 아닌 정부의 ‘요청’에 의한 기부인 만큼, 10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기업들이 이 사업을 유지해 나갈지에 대한 우려가 많다. 재계에서는 기부금을 몇년에 걸쳐 나눠 낼지를 놓고 의견이 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에 따라 ‘얼굴을 바꾸는’ 기업들의 모습은 최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밝힌 하나은행 사례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하나은행은 2007년 희망제작소에 300억원 규모의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올해 초 백지화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이번 사업을 추진할 ‘미소금융중앙재단’(현재는 소액서민금융재단) 이사장을 맡을 예정이다.
■ 대출 부실 막으려면 인력 양성이 핵심 이 사업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려면 한번 나간 대출의 회수가 원활해야 한다. 빚을 안 갚는 사람이 많아지면 기금이 고갈되고, 사업 자체에 대한 사회적 불신도 커지게 된다.
마이크로크레디트는 담보나 법적인 추심 수단이 없기 때문에 대출해간 사람의 상환 의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단순히 돈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대출자의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상담과 컨설팅, 접촉과 관리를 해나가야 한다. 마이크로크레디트 단체인 사회연대은행의 이종수 상임이사는 “마이크로크레디트 종사자는 사회 경험이 풍부해야 하고, 장기간에 걸쳐 노하우를 배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인력을 내실있게 육성해낼 수 있어야 사업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 계획을 보면 실제 사업을 담당할 지역법인들의 대표자는 ‘지역사회에서 사회공헌도가 높은 인사’로, 직원은 은행 퇴직자와 청년 중에서 자원봉사자로 선발한다고 돼 있다. ‘지역유지’와 자원봉사자들이 이 사업에 대한 전문성과 헌신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규모·시기 현실 맞게 추진해야 정부는 오는 12월부터 내년 5월까지 1단계로 전국 광역시·도를 중심으로 20~30개의 지역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소액서민금융재단 관계자는 “다음달 지역법인 인력을 모집한 뒤 11월 한달 동안 교육을 시켜 12월부터 대출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력 교육이 한달 만에 이루어지는 등 자칫 졸속 추진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대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이 진행돼 왔지만 아직까지 관련 단체가 10개 안팎일 정도로 어려운 사업이고 인력이 많지 않다”며 “정부가 무리한 목표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경영대)는 “정부가 이 사업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며 “장기적인 차원에서 민간의 자발적 참여자들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선희 이태희 김경락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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