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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황영기 부추긴 ‘공범 정부’ 책임은 ‘사절’

등록 2009-09-08 13:51수정 2009-09-0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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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방치 정부당국 ‘책임론’
재경부, 파생상품 장려…금감원, 위험성 경고 안해
대주주 예보도 방관…눈치보다 황 회장만 직무정지
황영기 케이비(KB)금융지주 회장이 우리은행 재직 때 파생상품 투자 손실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직무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은 것과 관련해 “대주주인 정부(예금보험공사)와 당시 금융당국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당시 재정경제부는 ‘선진금융기법’이라며 파생상품 투자를 장려했고, 감독당국은 투자의 위험성에 대해 아무런 경고를 하지 않았다. 여기에 황 회장이 이른바 ‘권력 핵심’으로 알려질 때는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면서, ‘눈치보기식 감독’이라는 비난까지 자초하고 있다.

재경부는 부추기고 참여정부 시절 재경부는 국내 은행들이 국제경쟁력을 가진 대형 투자은행으로 변신해야 한다며 ‘몸집 불리기’를 적극 유도했다. 시중은행들이 몸집 불리기 수단으로 주택담보대출·중소기업대출에만 매달리자, 2007년 들어서는 파생상품 투자, 인수·합병 등을 권유하고 나섰다. 2007년 7월 권오규 당시 재경부 장관은 은행장들과 한 간담회에서 “국내 은행권은 인수·합병 등 금융 자문, 유가증권 투자, 파생상품 거래와 리스크 관리 등 고부가가치 영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경부 출신 한 인사는 “그때는 황 회장이 아이비(IB·투자금융) 본부를 만들어 파생상품 투자를 하고, 국외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에 대해 정부 내부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금융가에선 “모피아(금융관료)들이 이전에는 잘한다고 부추겨놓고, 이제 와서 우리은행 부실 책임을 떠넘길 희생양이 필요하자 ‘황영기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는 말들이 많다.

금감원은 방기하고 은행 건전성을 감독해야 할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2005~2007년 대규모 파생상품 투자에 나설 때 한 번도 경고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감원이 은행의 모든 투자 결정을 들여다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내부 감사에서 잡아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2005년 ‘선제적 감독’을 강조하며 전담검사역(RM)제도를 도입했다. 특정 직원이 특정 금융기관을 맡아 상시적으로 주요 영업활동, 투자행위, 금융사고 등을 감시하는 제도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전담검사역이 우리은행 파생상품 투자를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알고도 방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사후 검사도 부실했다. 지난 6월 종합검사에서 발견한 우리은행의 투자 관련 규정 위반을 2007년 6월 종합검사에서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2007년 검사에서는 과도한 대출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고, 파생상품 쪽은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예보는 눈치보고 우리은행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는 황 회장이 파생상품 투자와 관련해 독단적인 결정을 내릴 때 제동을 걸지 못했다. 예보 관계자는 “황 회장 재임 때는 사회 전체적으로 ‘정부가 민간의 자율 경영에 간섭하지 말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며 “투자 결정에 개입했다가는 당장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을 것”이라고 억울해했다.

하지만 예보는 손실이 난 뒤에도 ‘눈치보기’ 행태를 계속했다. 예보는 지난해 4월 우리은행의 2007년 경영 실적 점검에서 이미 4000억원이 넘는 파생상품 손실이 드러났지만 황 회장에 대해 가벼운 징계를 내리는 데 그쳤다. 2008년 말 1조원을 웃도는 손실이 난 뒤에도 지금까지 징계 결정을 미루다가, 금감원이 총대를 메고 나서자 이제야 중징계를 하겠다고 밝혔다. 예보의 최고결정기구인 예보위는 예보 사장, 기획재정부 차관, 금융위 부위원장, 한국은행 부총재 등으로 구성돼 있다.

‘경영 실패와 감독 실패의 담합’ 깨야 황 회장을 둘러싼 금융당국의 이런 행태는 그의 ‘정치적 위상’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황 회장은 2004년 우리은행장 취임 당시 재경부 장관이었던 이헌재씨 ‘사단’으로 분류됐다. 금감위원장이던 윤증현 현 재정부 장관, 전윤철 감사원장과도 ‘서울고 인맥’으로 엮여 있었다. 현 정부 들어서는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했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초 금감원이 황 회장을 금융실명제 위반으로 ‘주의적 경고’를 내릴 때만 해도 쉽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번에는 다 ‘조율’이 됐다”고 말했다. 황 회장이 최근 정권 내부 ‘파워게임’에서 힘을 잃으면서 당국이 뒤늦게 징계에 나섰다는 비판을 뒷받침하는 발언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황 회장을 중징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감독 실패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금까지 이어져온 경영 실패와 감독 실패 간의 암묵적 담합 구조를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정 감사와 감사원 감사를 통해 감독당국의 책임을 물어야 하고, 한국투자공사(KIC)의 투자 실패 등 다른 문제에까지 조사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선희 김경락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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