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성과의 바닥 탈출 시기·비상경영조처 정상화 시기
“미 회복기미 미흡” “중 조정기 맞아” 내수 불안 여전
상장사 500곳 조사…절반 “비상경영 내년이후 정상화”
상장사 500곳 조사…절반 “비상경영 내년이후 정상화”
“아직 위기의 끝이 아니다.”
각종 경제지표들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낙관적 전망을 찾아보기 힘들다. 2일 <한겨레>가 주요 그룹과 대기업의 전략·재무 담당 임원들한테서 올 하반기 경영 전략을 들어봤더니, “하반기에도 기회 요인보다는 위기 요인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최고경영자(CEO)들의 메시지 역시 ‘수익성 극대화’ ‘원가 경쟁력’ ‘비용 절감’ 등이 주된 열쇳말이다. “투자를 확대하라”고 떠미는 정부의 압박에도 주요 기업들이 보수적인 ‘긴축경영’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는 근거다. 세계 금융위기에도 탄탄한 저력을 과시한 대표 기업들이 수비형 전략을 지속하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수요 회복의 불투명성에서 찾을 수 있다. 하반기에도 세계 수요 위축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ㄱ대기업 임원은 “최대 수요처인 미국의 소비시장이 살아날 조짐이 없고 소비 회복의 관건인 고용 지표가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다. 중국은 조정기에 들어간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위기 상황별 시나리오 경영을 지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ㄴ대기업 임원은 “우리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출과 수입 모두 전년 대비 마이너스”라며 “특히 하반기에는 우호적인 환율 여건과 각국의 재정 지출 특수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인플레 심리에 따른 원자재값 상승 등 상반기보다 불리한 변수들이 더 많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각국 정부가 출구 전략을 본격화할 경우 경영 여건은 사실상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수 의존도가 큰 ㅁ대기업 관계자는 “다행히 내수가 외환위기 때처럼 꽁꽁 얼어붙진 않았지만 하반기에도 매출 확대를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수익성 제고를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경제연구소가 500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가장 많은 38.6%가 ‘불확실한 경제상황’을 경영 활동의 최대 걸림돌로 꼽았다. 특히, 조사 대상 기업 대부분(85.2%)이 올해 말이면 경영 성과가 바닥을 벗어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경비 절감, 투자 축소 등 비상경영 조처를 정상화하는 시점에 대해서는 절반(50.3%)이 ‘내년 이후’라고 답했다. 경영환경의 불확실성 탓에 실적이 회복세로 접어들더라도 위기경영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뜻이다.
올 상반기 실적 호전에 대해서는 시장보다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ㄷ대기업 임원은 “상반기 브이(V)자형 회복을 했지만 반등의 성격이 크다. 수요 업체들이 재고를 다시 쌓는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이 더 많은 과실을 챙긴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ㄱ대기업 임원은 “사실 일본 업체들의 상대적 부진, 미국 업체들의 몰락으로 얻은 반사이익이 컸다. 제품과 브랜드의 원천 경쟁력이 강해진 것도 사실이나, 그보단 적절한 시장 대응과 위기 관리 등 경영 전략적 변수가 더 컸다”고 평가했다. 가동률 회복은 신규 수요 때문이 아니라 재고를 채우는 일시적인 과정이고, ‘파이’가 커지지 않는 한 경쟁 환경은 하반기에는 훨씬 더 치열해질 것이란 얘기다.
본격적인 투자와 고용 확대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최근 대규모 투자에 나선 ㄹ기업 임원은 “시장과 수요가 있으면 투자를 하는 것이지 규제가 풀리거나 돈이 많다고 투자를 하는 건 기업 논리가 아니지 않으냐. 정부의 투자 압력은 번지수를 잘못 찾고 있다”고 말했다. ㄷ대기업 임원은 “신규 수요는 없고 새로운 시장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무슨 수로 설비와 사람을 늘리느냐. 우리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시장 확대를 위한 공격적 전략을 모색하는 분위기가 전무한 건 아니다. ㅂ그룹 임원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경쟁 기업들의 속살과 맷집이 상당 부분 드러났다”며 “공격 포인트를 제대로 잡아 시장을 선도한다면 한두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주요 그룹이 계열사 임직원들한테 창의적 혁신과 적극적 변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ㄴ대기업 임원은 “우리 기업들 대부분이 선두기업을 발빠르게 쫓아가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성장했다.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 전략이 몸에 익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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