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비상경제대책반 요구사항 및 정부조처
투자·고용대책은 ‘600대기업 투자계획’뿐
“경제위기 대처 뒷전…재계 잇속만 챙겨”
“경제위기 대처 뒷전…재계 잇속만 챙겨”
재계가 정부와 보조를 맞춰 경제위기에 대처하겠다며 꾸린 ‘비상경제대책반’이 노골적인 대정부 민원 창구로 전락하고 있다. 투자와 일자리 확대 대책은 뒷전이고, 경제 살리기를 빌미로 정부로부터 각종 규제 완화를 따내는 데만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올 초 주요 대기업 전략·재무 담당 임원들로 구성된 비상경제대책반을 꾸렸다.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책에 발맞춰 경제부처 고위 간부를 초청해 경제 현안과 대응책 등을 논의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애초 취지와는 달리 지금까지 열린 다섯 차례 회의에서 재계는 각종 규제 완화 관련 민원만 50여건을 쏟아냈다. 지난 17일 5차 회의에선 △임시투자 세액공제 일몰 시한 연장 △대기업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확대 △비업무용 부동산 판정 때 유예기간 연장 등을 정부에 건의했다. 이와 별도로 전경련은 25일 별도의 정책보고서를 내어 비정규직 고용 기한을 아예 폐지할 것을 요청했다. 지금까지 대책반이 정부에 요구한 건의사항 가운데, 비업무용 토지 양도세율 인하, 기업구조조정 세제 지원, 수출입은행 자금 확충, 해운업 톤세 일몰 기간 연장 등은 거의 그대로 정부 정책에 반영됐다. 반면, 대책반이 지금까지 투자 및 고용 확대와 관련해 내놓은 대책은, 첫 회의 때 발표한 ‘600대기업 투자계획’이 사실상 전부다.
이 때문에 이 모임이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재계의 오랜 ‘숙원 과제’를 해결하는 자리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비업무용 토지 세율 인하는 대책반의 건의대로 지난 4월 국회 소위를 통과했는데, 개정안이 최종 확정되면 해당 기업들은 8000억원 이상의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재계가 출자총액제한, 수도권 규제, 금산분리 등 굵직한 규제 완화 정책에 이어, 경기부양과 직접 관계가 없는 사안까지 끼워넣으며 과실을 챙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 고위 관료들이 이런 재계의 ‘민원 접수’에 팔을 걷어붙이는 행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대책반 회의에는 허경욱 기획재정부 1차관과 노대래 차관보, 윤영선 세제실장, 안현호 지식경제부 산업경제실장, 권혁세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등이 참석했다. 윤영선 세제실장은 17일 회의에서 재계의 요구에 대해 “선별적인 세제 지원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권혁세 금융위 사무처장이 참석한 회의에서는 대기업 구조조정 대상에서 특정 업종과 그룹을 제외해줄 것을 요청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대기업 회원사들의 경영애로 사항을 접수해 정부에 건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건의사항) 대부분은 기업의 투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잇단 규제 완화에도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7년 만에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정부가 노동계와는 대화조차 거부하면서 재계의 일방적인 요구는 대부분 수용하며 친기업 행보를 더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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