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정체결 대상 선정 늦어져…정부 “이번주 결정”
일부 그룹은 “약정 대신 자율협약” 강력히 저항
계획대로 끝내더라도 내용 부실 우려 목소리도
일부 그룹은 “약정 대신 자율협약” 강력히 저항
계획대로 끝내더라도 내용 부실 우려 목소리도
구조조정을 놓고 정부와 대기업 그룹 간의 지루한 샅바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달 말까지 구조조정을 위한 재무구조 개선약정(이하 약정) 체결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정작 채권은행들은 일부 그룹에 대해 약정 체결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24일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일부 그룹의 약정 체결 여부를 놓고 막판 협의를 하고 있는 중”이라며 “이번주 초까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5월 말까지는 약정 체결을 모두 끝낼 수 있을 것”이라며 “은행들이 내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약정 체결이 확정된 일부 그룹은 이미 약정서 작성에 들어간 상태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지난달 30일 45개 주채무계열(그룹)에 대한 재무구조 평가를 마치고 14개 그룹을 ‘불합격’으로 판정했다. 채권단은 이후 14개 그룹과, 지표상 합격은 했지만 현금 흐름이 우려되는 일부 그룹을 대상으로 약정을 맺을 그룹을 추려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애초에는 5월 초에 대상을 결정하고 5월 말까지 약정 체결을 마친다는 계획이었는데,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빚어지는 것은 무엇보다 일부 그룹들이 약정 체결에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는 탓이다. 한 그룹은 채권단 쪽에 자체 구조조정 계획을 제시하며 약정 대신 ‘자율협약’을 맺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채권단은 긍정적인 반응인데 금융당국 쪽에서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자율협약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23일 기자들과 만나 “자율적인 구조조정 방식으로 하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면 은행장이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다른 그룹은 업종 특성을 고려해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는 요구를 계속하고 있다. 전경련도 총대를 메고 “조선이나 항공 등 외화 부채가 많아 환율 상승 영향으로 부채 비율이 높아진 기업을 약정 대상에 넣는 것을 유예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바 있다. 지난 21일에도 정병철 전경련 부회장이 “구조조정을 해야겠지만 옥석을 잘 가려 달라”며 당국을 압박했다.
금융당국은 물러서지 않고 있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22일 “외환위기 때 너무 일찍 긴장을 놓아서 기업 구조조정이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환자의 건강 회복을 위해서는 환부를 도려내는 아픔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애꿎은 은행만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앞으로 거래를 계속해야 하는 대기업들의 눈치도 안 볼 수 없고, 감독권을 쥐고 있는 금융당국의 서슬도 무섭기 때문이다. 한 금융계 인사는 “당국으로서는 큰소리를 쳐놓았으니 약정 대상이 적어도 10개 이상은 돼야 체면이 서겠지만, 기업으로서는 약정 대상이 되면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히는 분위기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64개 그룹이 모두 약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이런 차별화 문제는 없었다.
이에 따라 모든 절차가 금융당국 호언대로 5월 말까지 마무리되기는 벅차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체결을 끝내더라도 무리한 일정으로 약정 내용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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