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정책금융공사와 산은지주회사로 분리
국외경쟁력 부족…“투자은행업무 특화해야”
국외경쟁력 부족…“투자은행업무 특화해야”
산업은행 직원 김철수(가명)씨는 요즘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다. 몇년 뒤면 ‘신이 내린 직장’인 금융공기업 직원에서 시중은행 은행원으로 ‘신분’이 바뀌기 때문이다. 김씨는 “민영화 이후에 산은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다른 직원 최현수(가명)씨는 “포스코나 케이티앤지(KT&G) 같은 경우는 어차피 독점회사가 민영화한 것이라 별문제 없었지만, 산은은 기존에 수십년 동안 영업하고 있던 은행들과의 경쟁체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솔직히 미래를 장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55년 동안 ‘정책금융’의 상징이었던 산은이 오는 9월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함께 민영화의 길로 들어선다. 애초 ‘글로벌 투자은행’을 목표로 출발했던 산은 민영화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투자은행 업무에 강점을 둔 상업은행’ 모델로 바뀌었다. 일각에서는 자칫 산은이 상업은행·투자은행 양쪽에서 경쟁력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산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민영화 일정의 윤곽은 잡혔다. 일단 오는 9월께 정책금융 기능을 수행할 한국정책금융공사와 민영화될 산은지주회사 양쪽으로 조직이 쪼개진다. 산은지주회사는 산은, 대우증권, 산은자산운용, 산은캐피탈 등을 자회사로 두는 민간 금융지주회사가 된다. 정부는 향후 5년 안에 산은지주의 지분을 민간에 내다팔기 시작한다.
정부와 산은 쪽은 민영화 이후 산은의 경쟁력으로 △인수합병 등 투자은행 업무 △기업금융 업무 △국외네트워크 등을 꼽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산은이 국내은행 중에서는 나름대로 투자은행 업무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만, 세계적 플레이어들과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산은의 지식은 사실 자신이 보유했던 기업들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투자은행들과 공동주간사로 들어가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이라고 말했다.
최근 민유성 행장이 “시중은행을 인수합병하겠다”고 치고 나온 것도 투자은행 업무나 기업금융만으로는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불안감이 배경에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지점망이 전국적으로 깔려 있고 개인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시중은행을 흡수해, 지점 수(현재 44개)가 부족한 단점을 보완하고 일반은행 업무에서도 수익을 내보겠다는 계산이다.
산은의 ‘두 마리 토끼 쫓기’ 행보에 대해 한 시중은행 임원은 “일반은행은 이미 많은데, 비슷한 업무에 뛰어드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경쟁력도 없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라이선스를 받아 적당히 은행업 하려는 생각은 버리고 정말 자신 있다면 정통 투자은행 업무에 특화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십년 동안 몸에 밴 ‘공기업 근성’을 바꾸는 것도 과제다. 조만간 산은 직원들은 정책금융공사와 산은지주 중 어디로 갈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최씨는 “직원들 사이에서 정책금융공사에 대한 선호가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정책금융공사로 가면 ‘공기업 직원’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산은 관계자는 “정부의 산은 민영화 작업이 민영화 이후 생존 전략에 대한 치밀한 고민보다는 민영화 자체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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