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변동금리부 주택담보대출금리. 그래픽 최광일 기자 dido@hani.co.kr
프리워크아웃 정책 등 ‘사회적 책임’ 요구
은행쪽 “연체율 상승 등 수익성 계속 악화”
은행쪽 “연체율 상승 등 수익성 계속 악화”
경기침체가 깊어지면서 은행들에 대한 정부의 요구와 간섭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은행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며 적극적인 대출, 금리인하, 저소득층 지원 등을 압박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임금을 삭감해 금리인하를 하라’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은행들은 ‘우리가 동네북이냐’는 불만이 높지만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밀려 목소리를 낮춘 채 속만 끓이고 있다.
■ 대출금리 낮춰라 26일 은행권에는 비상이 걸렸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잇달아 대출금리 수준을 문제삼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원장은 “1인당 1억원이 넘는 인건비를 받으면서 은행이 대출금리를 낮추지 못하는 것을 국민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25일에는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금리 인하를 위해 은행들이 노력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비판은 한국은행 기준금리와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음에도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 하락폭이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현재 시디 금리는 2.43%이지만 은행에서 새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면 5% 중후반 정도를 내야 한다.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높이고 우대금리 혜택은 줄였기 때문이다.
은행들도 할 말은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 6~7%대의 고금리 정기예금, 후순위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는데, 시디 금리가 급락하는 바람에 역마진이 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솔직히 고시금리대로 대출을 해줬다가는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은행들의 수익성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순이자마진(NIM)이 하락하면서 이자수익이 줄고 있고, 펀드나 보험 판매도 부진해 수수료 수익도 시원찮다. 연체율이 올라가면서 쌓아야 할 충당금은 늘고 있다.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은행권이 적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익을 줄이거나 비용(인건비 등)을 줄이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며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조만간 소폭이라도 가산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보인다.
■ 저소득층 대출·프리워크아웃…요구사항 많아져 이런 ‘울며 겨자 먹기’식 결정은 처음이 아니다. 대부분 은행들은 다음달부터 저신용층 전용 신용대출상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7등급 이하 ‘금융소외자’를 위한 상품을 내놓으라고 금융당국이 독려했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만큼 10% 후반의 고금리를 받기는 하지만 연체 우려 탓에 은행으로서는 내키지 않는 사업이다. 은행들은 요즘 일반 고객에 대한 담보대출도 꺼리고 있다. 한 시중은행 개인여신 담당자는 “지금 대출 기준을 정하고 있는데, 과거 연체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해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달 13일부터 시작하는 개인 프리워크아웃도 은행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정부가 밀어붙인 정책이다. 프리워크아웃은 3개월 미만 단기연체자에 대해 이자율을 깎아주고 원금을 10~20년에 걸쳐 나눠 낼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체를 하면 이자를 오히려 깎아준다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 이자를 꼬박꼬박 내려는 유인(인센티브)이 줄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지난달부터는 정부 요구로 중소기업 대출도 전액 만기연장 해주고 있다.
■ “은행들, 할 일 안 하면 돌 맞을 수 있다” vs “차라리 국유화를 해라” 정부는 은행들이 ‘혼자 살겠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금융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은행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지금은 은행들이 고개를 숙이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혼자 돈 많이 벌겠다고 몸을 사려서는 안 된다”며 “불황이 깊어지면 사회적 불만이 커지면서 은행들이 정말 ‘돌 맞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금 은행들이 어려운 처지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위기상황이니 당분간은 손해를 보더라도 기업과 서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은행 본인들의 부실을 줄이는 데도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지금 정부 요구들은 은행에 신용평가를 하고 적정 금리를 정하는 등의 ‘상업은행’ 기능을 일정 부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며 “이렇게 뒤에서 조종을 하느니 차라리 국유화를 시키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은행들에 문제가 생기면 나중에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며 “공무원들은 생색내기에 주력할 뿐 이런 사실은 감추고 있다”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최근 발표된 금융 관련 정부 정책과 은행권 입장
■ “은행들, 할 일 안 하면 돌 맞을 수 있다” vs “차라리 국유화를 해라” 정부는 은행들이 ‘혼자 살겠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금융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은행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지금은 은행들이 고개를 숙이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혼자 돈 많이 벌겠다고 몸을 사려서는 안 된다”며 “불황이 깊어지면 사회적 불만이 커지면서 은행들이 정말 ‘돌 맞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금 은행들이 어려운 처지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위기상황이니 당분간은 손해를 보더라도 기업과 서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은행 본인들의 부실을 줄이는 데도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지금 정부 요구들은 은행에 신용평가를 하고 적정 금리를 정하는 등의 ‘상업은행’ 기능을 일정 부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며 “이렇게 뒤에서 조종을 하느니 차라리 국유화를 시키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은행들에 문제가 생기면 나중에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며 “공무원들은 생색내기에 주력할 뿐 이런 사실은 감추고 있다”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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