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은행들의 단순자기자본 비율 전망
내년까지 침체 가정 ‘스트레스테스트’
한국정부 “한국만 평가…이해못해”
한국정부 “한국만 평가…이해못해”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의 하나인 영국계 피치가 ‘한국 스페셜 리포트’를 내놓은 것은 지난 12일 밤 10시(한국 시각) 누리집(홈페이지)을 통해서였다. 이 소식은 <블룸버그> 통신 보도로 국내에 즉각 알려졌다. 보고서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한 결과, 내년 말까지 한국 은행들의 예상 손실이 42조원에 이른다며 은행자본 확충을 위해 정부가 좀더 적극적인 노력을 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상 손실액은 어떻게 추산됐으며, 정책 권고의 논리는 뭘까?
스트레스 테스트는 일정한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에 따라 해당 금융기관이 얼마나 잘 견딜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피치는 테스트를 위해 경제성장률과 환율 같은 거시지표와 업종별 부실률 등 여러 가지 가정을 세웠다. 우선 경제성장률은 올해 -2.5%로, 원-달러 환율은 내년 말까지 평균 1543원으로 가정했다. 은행 대출의 분야별 부실률은 건설 12%, 제조업 10%, 모기지론(주택담보대출 등) 1%, 비모기지 개인대출 8%로 계산했다. 또 유가증권 투자 손실률을 30%, 회사채 부도율을 5%로 상정했다.
피치는 이런 가정을 토대로 따져볼 때 국내 18개 은행은 내년 말까지 42조원의 손실을 낼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은행들의 건설사 대출 부실 위험을 강조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최근 수년간 이어진 건설붐으로 주택 과잉공급 현상이 발생했고, 이 와중에 건설사에 자금을 빌려준 은행들에도 주택 거품의 피해가 돌아올 것이다.” 국내 은행으로선 부인하기 힘든 지적이다.
한국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은행자본 확충에 나서야 한다는 피치의 권고는 이런 테스트 결과에 따른 것이다. 피치는 자본 확충이 없을 경우엔, 국내 은행의 단순 자기자본(TCE) 비율이 지난해 6월 말 6.4%에서 내년 말 4.0%로 2.4%포인트 떨어진다고 봤다. 특히 신한은행(3.9%), 우리은행(2.9%), 대구은행(3.7%), 농협(1.7%) 등 4개 은행은 평균치를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금융당국은 즉각 반박 자료를 내는 등 발빠른 대응을 보였다. 특히 피치가 테스트 결과를 공개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경기가 내년 말까지 침체할 것으로 가정한다면 은행 건전성은 자연스럽게 나빠지기 마련이나 이는 우리뿐 아니라 미국 등 다른 은행들 역시 마찬가지”라며 “한국 은행들만 평가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테스트 결과의 적실성을 두고선 금융 당국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양현근 금융감독원 일반은행서비스국 부국장은 “스트레스 테스트의 전제인 경제상황 가정은 해당 기관의 판단에 따라 하는 것”이라며 “피치의 가정이 적합한지 여부에 대해선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피치의 추정 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소 엇갈린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피치의 가정은 현상태가 지속할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경기침체가 이제 시작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피치가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가정을 세운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면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회사채 부실률을 5%까지 본 것은 너무 과다하게 추정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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