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대출, 하자니 불안…안하자니 눈치보여”
정부 ‘50조원 대출독려’에 은행들 ‘부실확대’ 우려
금융위 ”중기 붕괴는 금융기관 부실보다 더 비용커”
금융위 ”중기 붕괴는 금융기관 부실보다 더 비용커”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정부가 은행들한테 중소기업 대출 목표로 50조원을 제시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비올 때 우산을 뺏어서는 안된다”며 은행들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은행 부실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올해 은행이 중소기업에 50조원(상반기 30조, 하반기 20조)을 대출할 수 있도록 독려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정부는 은행들과 외화지급보증 관련 양해각서(MOU)를 맺어 중기대출 비율과 만기연장율을 최근 3년 평균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강제했다. 그 뒤 금융감독원은 날마다 각 은행들의 중기대출 규모와 만기연장률을 점검하고 있다.
연간 중기대출 증가액은 2004년까지만 해도 6조2천억원에 불과했으나 은행들의 자산확대경쟁으로 2005년 12조4천억원(증가율 5%), 2006년 45조3천억원(17%), 2007년 68조2천억원(22%)으로 급증세를 이어왔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증가세(14%)가 주춤했다. 이런 증가율은 경제성장률을 훨씬 웃돌아 ‘과잉대출’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올해 50조원이 증가할 경우 증가율은 11%다. 올해 경제성장율은 마이너스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성장률이 낮아지는데도 대출이 늘어나면 그만큼 금융자원이 특정 분야에 몰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원배분의 왜곡이 일어나는 것이다.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경영연구실 수석연구위원은 “우량 중소기업들은 소비위축으로 추가 설비투자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대출을 받지 않으려는 반면, 비우량 중소기업은 현금흐름이 악화돼 운전자금 대출이 필요해진다”며 “조만간 경기회복이 되면 다행이지만 자칫 경기침체가 길어지면 은행의 부실만 커질 수가 있다”고 우려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정부가 매월 5천억원 이상씩 순증시키라고 목표를 줬다”며 “튼튼해서 돈이 필요없다는 기업과 당장 돈을 안주면 부도가 날 수 있는 한계기업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정책에 조응은 해야 하는데 부실확대를 넋놓고 지켜볼 수도 없어 난감하다”고 덧붙였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50조원 목표는 올해 경제성장률 3%를 전제하고 나온 것이었다”며 “그 때도 좀 과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 경제전망이 마이너스까지 떨어진 상태에서는 너무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공식 방침은 여전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급격한 경기 위축으로 매출이 줄면서 자금수요가 늘고 있는데, 성장가능성이 있고 지금까지 잘해왔다면 지원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다른 나라 정부도 모두 은행들에게 중기대출을 독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솔직히 말하면 지금 나가는 대출의 일부는 부실화될 수도 있다고 본다”며 “하지만 전세계가 ‘버티기 작전’으로 들어간 지금, 우리만 중소기업들이 연쇄도산하도록 놔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소기업들이 무너지면 산업의 허리가 끊겨버리고, 이를 회복시키는 것은 금융기관의 부실 청산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선희 김경락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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