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매각 협상에서 무산까지
한화, 경제위기에 6조원 인수강행 무리 책임져야
산은, 경직된 대처로 이미지 타격 “내년초 재입찰”
산은, 경직된 대처로 이미지 타격 “내년초 재입찰”
대우조선 매각 무산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둘러싼 산업은행과 한화그룹의 협상이 최종 무산되면서 결국 양쪽 모두 깊은 상처를 입게 됐다.
김승연 그룹 회장이 “인생의 가장 큰 승부수를 대우조선해양에 걸고 있다”고 할 만큼 강한 의욕을 보였던 한화는 인수 무산으로 그룹의 중장기 성장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할 상황이다.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10년 안에 그룹 매출 100조원, 수출 비중 50%의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내세웠지만, 그 꿈은 물거품으로 끝나게 됐다.
대우조선 인수 실패는 한화 경영진의 시장예측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화 경영진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급격히 악화하던 지난해 10월에 6조원 이상의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인수를 강행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양해각서 체결 당시 금융위기가 가시화되고 있었음에도 한화가 예측을 제대로 못하고, 뒤늦게 국민경제를 볼모로 산은에 예외를 적용해줄 것을 요구했다”며 “성급한 면도 있지만 한화 경영진의 역량에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은 역시 대형 인수·합병 딜을 성사시키지 못함으로써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라는 목표에 차질을 빚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 결렬의 원인을 한화의 ‘성급함’과 함께 산은의 ‘경직성’에서 찾고 있다. 산은은 특혜 시비에 휘말려들 가능성 때문에 포스코의 입찰자격 결정과 한화와의 최종 협상에서 재량권을 발휘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협상 과정에서 금융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상황 변경이 생겼다”며 “산은이 이를 고려해 한화 쪽의 분납 요구를 받아줄 수도 있었는데 유연함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양쪽은 당분간 3천억원의 이행보증금 반환을 두고 법적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선 한화의 확인 실사가 무산된 데 대한 책임소재와 경기 악화로 인한 대우조선 가치 하락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었느냐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은은 한화가 ‘본계약 뒤에라도 확인 실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양해각서에 서명한 만큼 이행보증금 몰취(돌려주지 않음)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화그룹은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한화 고위 관계자는 “불리한 건 사실이지만 산은이 확인 실사를 보장하지 못한 책임이 있고, 경제상황 악화도 불가항력이었다는 점에서 다퉈볼 만하다”고 밝혔다. 3천억원은 한화그룹의 지난해 순이익의 30%에 이르는 규모로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한 기업 인수·합병 전문 변호사는 “일부 조정의 여지가 있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경기침체 장기화와 함께 기업 인수·합병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대우조선의 매각이 다시 추진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산은은 본입찰에 참여했던 포스코 등을 대상으로 인수의향을 확인한 뒤 다시 매각계획을 세운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포스코는 이구택 회장이 최근 “전혀 관심 없다”고 공표한 바 있고, 지에스도 “재검토한 바 없다”고 밝혀 당분간 인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산은 관계자는 “당장 매각에 들어가기보다 조선업 경기 동향 등을 살펴 연말이나 내년초쯤 재입찰에 들어갈 것”이라면서도 “재매각에 들어가더라도 애초 한화가 제시한 매각조건을 유지하기는 힘들고, 가격을 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김경락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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