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건설·조선업체 111곳의 생사가 결정될 운명의 날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금융권은 이들 기업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퇴출 여부를 오는 23일까지 확정해야 한다. 해당 기업들은 채권은행들을 찾아다니며 로비전을 벌이는 한편, 평가 기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지방자치단체 등을 통해 구조조정을 중단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 금융당국이 구조조정 대상을 건설·조선 외 다른 업종과 대기업·그룹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앞으로 이런 문제점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점수 올려달라” 은행에 읍소·로비
“심사기준 주관적” 한편으론 반발 칼자루 쥔 은행들도 퇴출에 소극적
‘구조조정 용두사미되나’ 우려 시각 ■ 한편으론 로비하고 금융권이 1차 평가 대상으로 선정한 111개 기업에 포함된 건설사, 조선사들의 임직원은 요즘 채권은행의 재무담당자들을 찾아다니라 쉴 틈이 없다. 한 주택전문 중소 건설사 임원은 “자금담당 부서 임직원들이 총동원돼 주채권은행 쪽에 ‘급한 불만 끄면 경영이 바로 호전될 수 있다’는 점을 여러 경로를 통해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건설사는 재무담당 임원이 채권은행으로 날마다 출근하다시피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모 건설사는 사주의 사재출연 방안까지 내놓으며 등급을 올려 달라고 읍소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특히 건설업종 경우 전체 평점의 60%를 차지하는 비재무부문 점수를 높이는데 사력을 다하는 분위기다. 비재무평가에는 회사 업력, 경영진 평판, 소유·지배구조 투명성, 사업포트폴리오, 지방·국외사업장 비중 등이 포함된다. 평점 70점 미만은 워크아웃, 70점부터는 지원대상이기 때문에 자체 계산 점수가 70점 안팎인 건설사는 1, 2점을 올리기 위해 올인할 수밖에 없다. 한 금융권 인사는 “지방 건설업체 경우 정치인들의 돈줄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치권에 대한 로비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한편으론 반발 기업들은 읍소·설득 작전을 펴는 한편으론 금융권의 심사 기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경영진 평판 같은 비재무평가 항목들이 너무 주관적인데다, 지난해 하반기 부채비율을 중시하기 때문에 대형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며 “지난 참여정부 때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지방 주택사업 비중을 늘렸던 건설사가 불리해진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건설경영협회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는 ‘부채비율 200%,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이라는 단순한 기준으로 심사를 했는데 지금은 기준이 너무 복잡해 채권단의 주관적 평가가 개입될 소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지자체에서도 반발하고 나섰다. 박준영 전라남도 지사는 최근 성명에서 “조선사 구조조정 기준이 중소형 중소산업의 발전 잠재력 등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 없이 금융 논리만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2004년 정부 전략산업으로 선정돼 이제 막 시작한 중소 조선사를 퇴출시킨다면 앞으로 누가 정부 정책을 믿고 투자하겠느냐”고 주장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는 은행이나 기업이 모두 한꺼번에 망가져서 저항할 여지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저항이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은행들도 머뭇머뭇 명목상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은행들도 구조조정을 회피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 기업을 퇴출시키면 그 기업에 대한 대출은 모두 부실채권으로 처리돼 은행의 건전성 기준이 낮아진다. 또 이 기업의 여신 담당자는 이에 대해 인사고과상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은행에는 구조조정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유인이 충분하게 있다”며 “자기 살을 자기가 잘라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은 한편으론 기업을 퇴출시켜 부실채권이 증가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기업을 살려서 계속 자금지원을 해줬다가 결국 망해서 더 큰 부실을 떠안게 될까 봐 주저하기도 한다”며 “은행에는 양면이 다 있다”고 말했다.
■ 흐지부지 우려 이에 따라 금융권 안팎에서는 구조조정이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이미 대형 건설사 중에는 워크아웃이나 퇴출 대상이 없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도 모두 ‘우리가 담당하는 기업은 괜찮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시중은행 한 임원은 “우리 주거래 조선사들은 대부분 괜찮은 것 같고, 건설 쪽은 주택 사업 비중이 많은 쪽이 약간 문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가에서는 111개 중에 퇴출 기업은 6~7개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라”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여신심사 담당 부행장은 “우리가 평가하는 기업이 건설사 11개, 조선사 2개인데 내일쯤이면 평가가 끝날 것 같다”며 “D등급(퇴출)은 없고, C등급(워크아웃)은 2~3개 정도 된다”고 말했다.
강경훈 동국대 교수(경영학과)는 “구조조정이 지연되거나 불충분하면 시장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기 때문에 시중에 돈이 돌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우량기업에까지 피해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안선희 최종훈 김경락 기자 shan@hani.co.kr
“심사기준 주관적” 한편으론 반발 칼자루 쥔 은행들도 퇴출에 소극적
‘구조조정 용두사미되나’ 우려 시각 ■ 한편으론 로비하고 금융권이 1차 평가 대상으로 선정한 111개 기업에 포함된 건설사, 조선사들의 임직원은 요즘 채권은행의 재무담당자들을 찾아다니라 쉴 틈이 없다. 한 주택전문 중소 건설사 임원은 “자금담당 부서 임직원들이 총동원돼 주채권은행 쪽에 ‘급한 불만 끄면 경영이 바로 호전될 수 있다’는 점을 여러 경로를 통해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건설사는 재무담당 임원이 채권은행으로 날마다 출근하다시피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모 건설사는 사주의 사재출연 방안까지 내놓으며 등급을 올려 달라고 읍소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특히 건설업종 경우 전체 평점의 60%를 차지하는 비재무부문 점수를 높이는데 사력을 다하는 분위기다. 비재무평가에는 회사 업력, 경영진 평판, 소유·지배구조 투명성, 사업포트폴리오, 지방·국외사업장 비중 등이 포함된다. 평점 70점 미만은 워크아웃, 70점부터는 지원대상이기 때문에 자체 계산 점수가 70점 안팎인 건설사는 1, 2점을 올리기 위해 올인할 수밖에 없다. 한 금융권 인사는 “지방 건설업체 경우 정치인들의 돈줄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치권에 대한 로비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사 및 중소 조선사 구조조정 순서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