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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은행에 주는 혈세정부 “공짜는 없다”

등록 2008-12-11 19:23수정 2008-12-12 00:18

은행 자본확충 단계별 정부 요구조건(예상) (※ 표를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공적자금 투입땐 경영권 통제 ‘대가’
“은행책임 엄중히 물어야” 목소리도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은행권에 대한 ‘공적 통제’ 논란이 빚어질 전망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외풍’에, 대출 자산 부실화라는 ‘내상’을 함께 맞고 있는 은행권에 사실상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일이 차츰 현실로 다가오고 있어서다.

정부는 자금 지원을 하는 대신 은행 쪽에 책임을 묻고 경영권을 일정 부분 통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하고 있다. 10년 만에 다시 은행권에 국민 혈세를 집어넣는 만큼 은행이 치러야 하는 대가의 수준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 정부-은행 팽팽한 신경전 금융당국은 최근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기본자본 비율 9%’(9월 말 현재 8% 안팎)라는 힘든 목표를 은행 쪽에 던졌다. “내년에 경기침체가 심해지면 부실채권이 크게 늘어날텐데 그 전에 충분히 자본을 확보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다. 그동안 ‘보완자본’ 쪽에만 신경쓰고 있던 은행들은 뒤통수를 맞았다. 은행들은 하이브리드 채권 발행, 배당 억제, 대주주 유상증자 등을 통해 목표치를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갑자기 기본자본을 높이라고 요구했는데, 별 군소리 없이 은행들이 죽어라고 뛰는 이유는 한 가지”라며 “목표치를 못 맞추면 결국 정부 돈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의미하는 바는 바로 경영간섭”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번 외채 지급보증 양해각서로 한 번 데었는데, 또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로서도 은행의 자구노력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 은행이 최대한 노력하고 자기희생을 했다는 점을 국민들이 이해해야 공적자금 투입을 위한 명분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지금 자구노력 단계는 은행 처지에서도, 정부 처지에서도 모두 필요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 정부 “공짜 점심은 없다” 정부는 한 손에는 ‘자금’을, 또 한 손에는 ‘양해각서’(은행통제)라는 칼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은행권에서는 공공연하게 정부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보완자본을 포함한) 전체 자기자본비율 12%는 맞출 수 있겠는데 기본자본 비율 9%는 문제”라며 “결국 국책은행이나 연기금 등 정부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윗사람들이 열심히 뛰고 있는데, 어찌 될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산업은행이나 연기금 등이 우선주(의결권 없는 주식)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돈을 넣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단 연말까지 목표치를 맞추면 좋고, 은행 쪽에 확실한 방안이 있으면 한두 달 더 기다려줄 수 있지만, 마냥 봐줄 수는 없다”며 “은행 말 믿고 있다가 외환위기 때처럼 부실 금융기관으로 전락하도록 놔둘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예금보험공사를 통한 명실상부한 공적자금 투입은 아니지만 사실상 정부 돈이 들어가는 만큼 은행 쪽에 ‘대가’를 요구하겠다는 것이 정부 내부 분위기다. 금융당국 한 고위 관계자는 “공짜 점심은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은행 처지에서도 부실이 더 커진 뒤에는 내놓아야 할 것이 더 많을텐데, 이 정도에서 돈 받고 일정 부분 양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선진국을 보면 배당 억제, 경영진 보수 제한, 대출 유지 등을 요구했다”며 “지난 번 외채 관련 양해각서 수준이거나 플러스 알파가 붙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 “은행 책임 엄중하게 물어야” 만약 정부 자금 투입이 현실화한다면 은행의 도덕적 해이 논란이 다시 거세질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지금 위기는 그동안 은행들이 외형 경쟁을 하면서 가계 대출, 중소기업 대출을 방만하게 늘린 탓이 크다”며 “이런 책임을 묻지 않고 지원해 주면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특히 이번에는 두 번째 공적자금 투입인 만큼 국민들을 설득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박사는 “은행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하는데 정부가 검토하는 우선주 인수 방식으로 제대로 은행을 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조 박사는 “또 한편으로는 정부가 자금지원을 한 뒤 건설경기 부양 등에 은행을 이용하는 구시대적 관치금융이 되살아나는 것도 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투기자본감시센터는 12일 ‘은행 국유화’를 주제로 ‘외환위기 11주년 토론회’를 연다.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은 “은행을 소유한 투기자본의 책임은 묻지 않고 은행권 노동자와 서민에게만 고통을 남기는 방식의 은행 국유화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안선희 김경락 기자 shan@hani.co.kr




구제금융 투입 영국·미국은
배당정책·임원보상 제동은행에 재갈 물리는 협약

우리보다 경기침체가 빨리 현실화된 미국과 영국은 이미 정부가 은행들에 구제금융(공적자금)을 투입한 상태다. 이들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대신 은행의 배당정책, 경영진 보상관행 등에 재갈을 물리는 내용의 협약을 은행 쪽과 체결했다.

■ 영국은 지난 10월 초 아르비에스(RBS), 에이치비오에스(HBOS), 로이즈 티에스비(Lloyds TSB) 등 3개 은행에 대해 총 370억 파운드의 자본을 우선주 및 보통주 형태로 출자했다. 이 자원지금으로 이 은행들의 기본자본 비율은 9%를 웃돌게 된다.

정부는 지원의 대가로 △3년간 중소기업 및 주택구입자 대출을 2007년 수준으로 유지하고 △2008년 임원에 대한 현금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고 앞으로 임원 보수체계를 재점검하는 한편 △비상임 이사의 임명 및 배당정책에 대해 정부와 협의하고 승인을 받겠다는 내용의 특약을 은행 쪽과 맺었다. 정부는 정부가 전액 출자한 지주회사(UKFI)를 만들어 금융회사에 대한 정부 지분을 관리하고, 은행과 맺은 특약을 은행이 제대로 준수하는지를 점검하기로 했다.

■ 미국 재무부는 7000억달러의 구제금융 가운데 2500억달러를 은행 자본투입에 활용하기로 했다. 지난 10월~11월에 걸쳐 씨티그룹 등 9개 대형은행에 1250억달러, 21개 중소은행에 336억달러를 이미 지원했다. 지원방식은 금융지주회사의 경우 ‘누적적 우선주’(해를 넘기고도 배당을 보전받는)를, 일반 예금은행인 경우 ‘비누적적 우선주’를 매입해 기본자본을 높여주는 것이다. 재무부 매입 우선주의 배당률은 지원 후 최초 5년간 연 5%, 이후 연 9%다. 또 재무부는 지원해준 금융회사의 보통주를 지원 규모의 15%까지 살 수 있는 권리(워런트)를 취득했다.

미국 정부가 내세운 지원 조건은 △고위경영진 성과보상을 정부가 통제하고 △지원 후 최초 3년간 재무부 허가 없이는 보통주에 대한 배당금 증액이 불가능하고 △대상 금융회사는 재무부 허가 없이는 우선주 상환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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