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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은행들아, 은혜 갚아라” 독촉장 날리는 정부

등록 2008-11-06 19:12

“은행들아, 은혜 갚아라” 독촉장 날리는 정부. 그림 김영훈 기자
“은행들아, 은혜 갚아라” 독촉장 날리는 정부. 그림 김영훈 기자
‘관치금융’ 약 될까 독 될까
지급보증·달러공급 등 지원 뒤 “중기대출 나서달라”
은행은 “정부강요 폐해, 외환위기 때 충분히 겪어”
지난 5일 오전 7시 서울 팔래스호텔 한 회의장에는 국내 은행계를 주무르는 인사들이 모두 모여 앉았다. 전광우 금융위원장과 김종창 금융감독원장, 임승태 금융위 사무처장, 주재성 금감원 부원장보 등 금융당국 쪽 인사들과 강정원 국민은행장, 이종휘 우리은행장, 신상훈 신한은행장 등 7대 시중은행장들이 마주앉았다.

전 위원장이 먼저 운을 뗐다. “정부로서는 여러 위험을 무릅쓰고 은행에 대해 과감하고 선제적 조처를 모두 해줬다. 중소기업 지원에 적극 나서달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김 원장이 바통을 이었다. “은행들이 중소기업 지원실적은 저조한 반면, 예금 유치를 위해 다른 은행에 대해 루머까지 퍼뜨리는 사례가 있다. 앞으로 철저히 점검해 은행장에게 분명하게 책임을 묻겠다.” 참석한 은행장들은 “그런 측면이 있다. 돌아가서 챙겨보겠다”고 대답했다. 이는 지난 4일 이명박 대통령이 “은행은 돈이 필요 없을 때 갖다 쓰라고 하는데 정작 필요할 때 안면을 바꾸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은행을 정면으로 비난하고 나선 지 하루 뒤 풍경이다.

요즘 금융권에선 ‘관치에 대한 향수’와 ‘관치의 악몽’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5일 저녁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지금은 전쟁 상황이다”며 “관치금융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관치의 부활’에 반발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이미 ‘관치’라는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난 두달 동안 정부는 은행에 대한 온갖 지원조처를 쏟아냈다. 달러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을 치자 외채 지급보증을 해줬고 한국은행은 외환스와프시장에서 달러를 사실상 무제한 공급해주기로 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1%포인트나 내리고, 그래도 대출금리가 안 내려가자 은행채를 사주기로 했다. 규제가 너무 빡빡하다고 해 원화유동성 비율을 완화했고, 은행 자기자본비율 기준을 강화하는 ‘바젤 Ⅱ’ 도입 시기도 늦춰줬다. 하지만 은행들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수출기업의 수출환어음 매입을 중단해버리고, 중소기업 대출비중은 줄였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쏟아낸 돈이 은행까지만 가고 기업과 가계로는 흘러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우리가 은행 좋으라고 돈을 쏟아부은 줄 아느냐”며 “은행들은 이렇게 경제가 안 좋을 때는 속성상 현금을 움켜쥐고 있으려고 한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지급보증을 해주면서 은행과 맺기로 한 양해각서(MOU)에 ‘실물경제 유동성 지원’ 항목이 들어간 것도 이런 맥락이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한 기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는 누군가 욕을 먹어야 한다”며 “금감원이 적극 나서겠다. ‘수단’은 많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은행에 대한 검사권을 가지고 있다.

은행 쪽은 당연히 반발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외환위기 전에도 부실기업에 대출을 계속 해주라고 정부가 강요해 은행 부실을 키웠다”며 “현재 은행 임원급은 그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정부가 저런다고 쉽게 말을 듣겠느냐”고 말했다. 오치화 금융노조 홍부부장은 “언론장악에 이어 금융장악을 하려는 시도”라며 “관치금융의 폐해는 이미 외환위기 때 충분히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중소기업보다 건설사 살리기를 하려고 이러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강경훈 동국대 교수(경영학과)는 “현재 경기 침체는 2~3년 이상 이어질 수 있는데 이런 식으로 한계기업이나 가계의 대출을 연장해주다가는 결국 은행까지 부실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개입의 필요성은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현 정부의 ‘철학’과 ‘능력’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현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데는 동감한다”며 “하지만 애초 이 정부가 내세운 ‘시장주의’,‘민영화’ 등의 이념과는 정반대 행보라는 점에서 시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은행·기업 구조조정 작업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관치를 하고 싶다면 제대로 해야 한다”며 “효율적인 관치는 소리가 나서는 안된다. 지금 금융당국의 행태는 윗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쇼업’(생색내기)에 가깝다”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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