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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기업 인수, 외국계와 당당하게 겨룰 터”

등록 2005-05-05 20:14

보고펀드의 주역 3인방. 사진 왼쪽부터 신재하,변양호,이재우씨
보고펀드의 주역 3인방. 사진 왼쪽부터 신재하,변양호,이재우씨

■ 토종 PEF '보고펀드' 3명의 희망을 듣다

"우리 인력, 자본으로 철저히 글로벌하게 "
"돈 필요한 곳 살려 좋고 수익챙겨 좋고..."

사람들은 그들을 ‘드림팀’이라고 부른다.

외국계 피이에프(PEF)들이 기업과 부동산 투자로 세금 한푼 내지 않고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데 국민들은 심란해 있었다. 이때 그들은 해상왕 장보고에서 이름을 딴 ‘보고펀드’라는 토종 피이에프를 들고 나타났다. 이들은 과연 장보고처럼 외국계 피이에프를 평정할 수 있을까? 세 사람은 잘 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보고로 의기투합 했다. 서울 소공동 한화빌딩 리먼브러더스증권 한켠에 꾸린 임시사무실로 그들을 찾아갔다.

“공직에 남아 승진하는 것보다 이 일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지켜보면서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리먼브러더스 사무실을 가리키며) 저 사람들이 국내 부동산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있는지 아십니까? 아니, 왜 우리 땅인데 외국계가 더 잘 벌게 놔둡니까?” 변양호 대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최소한 차관은 할 수 있다는 평을 받은 인물이다.

"외국계가 별건가요 우리가 돈 없었을때 헐값 주워 담은거죠"

하지만 이들이 ‘애국심’만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들은 ‘프로’다. 이들은 피이에프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리딩 컴퍼니’를 만들겠다는 ‘야망’, 그리고 토종 피이에프가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즉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으로 가득차 있었다. “국내 최대 증권사 사장 자리도 거절했습니다. 피이에프는 인수합병(M&A), 파이낸싱, 기업경영 등이 모두 엮어진 금융산업의 종합예술입니다. 모든 인베스트먼트 뱅커(인수합병 업무 등을 담당하는 증권 전문가)들의 꿈입니다.”(이재우 보고펀드 대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모건스탠리 주식, 연말보너스(외국계 증권사의 보수는 90%가 연말에 지급된다)를 모두 포기하고 나오지는 않았겠죠.”(신재하 보고투자자문사 대표)

하지만 글로벌 네트워크와 정보망,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외국계 피이에프와 대항해 승산이 있을까? 그들이 얼마나 영악하고 무서운 집단인가? “외국계요? 별 거 아닙니다. 이제 그들의 시대는 끝났습니다.”(변) 근거없는 평가절하가 아니다. “그들이 대단한 것 같지만 기껏 국내에 사무실 하나 얻어 헤드급 한명과 사무직 3~4명 데리고 일하는 겁니다.”(신) 그럼에도 그들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너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직후는 ‘헐값세일’ 시기였다. 그들은 힘들이지 않고 알짜배기 기업들을 주워담았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국내 기업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토종 피이에프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제 진검승부를 겨뤄볼 만하다.

더구나 시장에 매물로 나와있는 기업들이 전부가 아니다. “피이에프의 진짜 게임은 남들이 모르는 물건을 찾아 경쟁없이 싼 가격에 사들이는 겁니다.”(이) 일시적으로 돈이 없어 부도 위기에 처했지만 경쟁력이 있는 기업, 마이너 업체들을 합병하면 업계 1위로 성장할 수 있지만 돈이 없는 기업, 재벌이 처분하고는 싶은데 경쟁 재벌에게는 넘겨주기 싫은 계열사 등 피이에프의 투자대상은 무궁하다. 국내 인맥과 상황에 취약한 외국계는 이런 ‘보이지 않는 딜’을 찾아낼 수가 없다.

물론 외국계의 장점은 분명하다. “그들은 어떤 회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 때 얼마에 인수해서 어떻게 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은행을 인수한다고 하면 이미 외국에서 은행을 인수해본 경험이 있는 거죠.”(신) 아직도 한국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외국계 피이에프 자금이 5조원이나 된다. “페어하게 경쟁하면 됩니다. 요즘처럼 너무 몰아붙일 필요도 없습니다. 옛날처럼 돈이 급하다고 매달려서도 안되고, 이제 그들 돈이 필요없다고 차별한다는 느낌을 줘서도 안됩니다.”(신) ‘쿨하게’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남들이 모르는 물건 싸게 사들이는 게 프로
자금 모이는대로 탐색"

토종 피이에프라고 외국계와 다른 온정주의적 색채를 기대하는 것도 금물이다. 외국계건, 토종이건 피이에프는 피이에프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지배자’(<이코노미스트> 2004년11월)라고 평가받을 만큼 가장 자본주의적인 투자모델이다. 수익률 높이는 게 지상 목표라는 말이다. “필요하다면 노조나 기존 경영진과 충돌하는 일도 서슴지 않을 겁니다.”(이) “우리의 인력과 자본으로 하되 철저하게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춰서 할 겁니다.”(변)

하지만 그들은 피이에프가 우리 경제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한 ‘돈’이 필요한 기업은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돈 문제만 해결되면 부활하거나, 더 잘 될 수 있는 기업이 많습니다. 지금까지는 은행대출이나 재벌돈, 아니면 외국계 피이에프밖에 없었죠. 토종 피이에프가 성공하면 투자자는 돈을 벌어 좋고, 투자대상 기업은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어 좋고, 국민들은 ‘우리 금융도 할 수 있구나’ 시원해져서 좋습니다. 3자 모두가 해피해지는 거죠.”(변)

보고펀드는 4월28일부터 20여군데의 투자자들을 상대로 설명회에 들어갔다. 최소 1조원 정도는 모으는 게 목표다. 이미 오케이 사인을 받은 곳도 몇군데 된다. 펀드의 30% 정도는 외국투자자로 채울 생각이다. “외국투자자들도 이제 외국계 피이에프가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이) 자금이 모이면 본격적인 매물 탐색에 들어갈 것이다. 우리금융, 하이닉스,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시장에 나와있는 물건들은 모두 검토 대상이다. 단독으로 인수하기 어려운 곳은 다른 피이에프나 전략적 투자자(투자대상 기업과 같은 업종에 있는 기업)와 손을 잡을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딜’도 4~5군데 제안이 들어와 있는 상태다.

이들은 “우리들이 실패한다면 한국에서 피이에프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공언했다.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이지만 개척자로서의 열정과 그동안 그들이 보여준 실력, 그리고 “세명이 모여 회의를 하면 불이 붙는다”(이)고 말할 정도의 시너지를 감안한다면 그리 지나친 말도 아닌 듯했다.

■ 사모투자전문회사란

자금 모아 기업투자
가치 올린뒤 되팔아

사모투자전문회사(PEF·피이에프)는 개인이나 금융회사, 기업 같은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몇천억~몇조 단위의 대규모 펀드를 조성한다. 그 뒤 뭔가 문제가 생긴 기업의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인수하거나 경영에 참여한다. 3~5년 정도 구조조정,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올린 뒤 애초 사들인 가격보다 비싼 값에 지분을 되팔아 수익금을 투자자들에게 나눠준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 시작된 투자모델이며 1995년 이후 급격히 늘어나 현재 전세계적으로 2700여개, 1조달러 넘는 규모의 피이에프가 활동 중이다. 우리나라에는 뉴브리지, 론스타, 칼라일, 씨티벤처캐피탈(CVC) 등이 들어와 있다.

■ '보고펀드' 3인방은 누구

변양호 보고펀드 공동대표는 재경부에서 금융정책국장, 금융정보분석원장 등 핵심요직을 두루 거친, 가장 잘 나가던 관료였다. 외환위기 직후 외채협상과 뒤이은 외평채 발행 협상을 주도했으며, 부실기업의 구조조정 및 매각 작업에 참여했다. 2001년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세계 경제를 이끌 15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재우 보고펀드 공동대표(전 리먼브러더스증권 한국대표)는 씨티은행, 리먼브러더스증권 등 외국계 금융사에서 20년 넘게 경력을 쌓은 금융 베테랑이다. 98년 H&Q라는 미국계 피이에프를 만들어 굿모닝신한증권(당시 쌍용증권)을 인수한 뒤 신한지주에 매각한 경험이 있는 국내 피이에프 1세대다.

신재하 보고투자자문사 대표는 국내 대표적인 인수합병 전문가로 모건스탠리 기업금융부 한국 대표를 역임하면서 조흥은행의 신한금융으로의 매각, 외환은행의 론스타로의 매각, 대우종기의 두산중공업으로의 매각 등 국내 주요 기업의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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