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수건 더 짜라’ 기업들 비상경영
비용절감 노력 불구 ‘상징적 차원’ 한계
“상황 더 악화땐 채용 축소·감원 불가피”
“상황 더 악화땐 채용 축소·감원 불가피”
종이컵 대신 머그컵 사용
퇴근 시간이후 전등 자동 OFF
출장 줄이고 행사들 취소 ‘화장실 수도의 수압을 낮춰라’, ‘종이컵은 머그컵으로 대체하라’, ‘외국출장은 최소화하고 비즈니스석은 이코노미석으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상황에 기업들의 비용절감 노력도 필사적이다. 이면지 활용, 점심시간 컴퓨터 모니터 끄기와 같은 기본적인 원가절감 방안은 이제 일상화된 지 오래다. 올 상반기에 초고유가 시대를 맞아 냉방온도를 높이고 직원들의 넥타이를 풀게 했던 기업들이 경제위기에 다시 한번 ‘마른 수건 짜내기’에 나서고 있다. 기업들은 당장 눈에 띄는 비용절감 노력 외에도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대비해 채용·투자 계획 변경 검토도 본격화하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SKT)은 서울 을지로 본사 지하 2층에 있는 직원용 카페의 컵을 최근 종이컵에서 머그컵이나 유리컵으로 바꿨다. 이 카페는 직원이 먹는 음료 값을 회사가 대신 지불해 주는 곳이다. 홍보실 직원은 “테이크아웃용 종이컵을 이용하다 보니 직원들이 음료를 하루에도 몇 잔씩 사무실로 가져간다”며 “환경도 생각하고, 음료 소비량을 줄여 비용도 절감하기 위해 취한 조처”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회사는 화장실 수도의 수압을 낮추는 방식으로 수도 요금도 아끼고 있다. 야근 풍경도 변하고 있다. 지에스칼텍스와 에스케이텔레콤, 신세계 등에선 저녁 8시가 되면 사무실의 전등이 자동으로 꺼진다.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해서다. 야근이 필요한 직원은 따로 사내 전산시스템에 접속해 야근신청을 해야 하고, 전등도 그 자리만 켜준다. 신세계는 전기 사용량이 많은 정수기, 커피 자동판매기 등에 타이머 콘센트를 설치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폐점 뒤 전원을 차단하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올해 약 170만㎾, 모두 1억5천만원의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팍’ 줄인 외국출장이다. 환율 급등으로 외국출장 비용이 불과 한두 달 전보다 1.5배 이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외국전시 행사에 통상 40~50명가량이 참가했는데 최근 30여명으로 줄였다. 에스케이그룹은 28일 글로벌기업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열 계획이던 ‘주요 경영자 세미나’를 국내에서 열도록 바꿨고, 직원들의 외국출장도 30% 이상 줄이기로 했다. 한국아이비엠은 금융위기 이후 외국출장을 줄이는 것은 물론, 본사 차원에서 소집하는 회의도 가급적 전화나 화상회의로 대체했다고 한다. 예정된 연례행사를 취소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경비지출 관행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보통 한해 부서 예산을 조금 부족하게 책정하다 보니 관행적으로 다음해 예산을 미리 끌어와 썼는데, 최근 이를 전면 금지해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일년에 한차례 직원가족을 대상으로 열던 10월 정기음악회를 부랴부랴 취소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연례행사라 문제없이 진행될 줄 알고 준비를 해왔는데 최근 취소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같은 그룹이라도 비용절감의 고통은 비주력 계열사에 더 혹독하다. 대기업 본사에서 일하다 그룹 계열사로 자리를 옮긴 한 임원은 “이달부터 외국출장 때 항공기 좌석을 비즈니스석에서 이코노미석으로 바꾸라는 지침이 내려왔다”며 “본사 임원들은 아직까지 이런 지침을 적용하지 않고 있는데, 원가절감에도 차별을 두고 있는 셈”이라고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 계열사는 최근 팀 운영비도 대폭 삭감당해 직원들 회식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비용절감이 강조되면서 돈줄을 쥐고 있는 재무파트가 평상시보다 발언권이 커지는 사내 ‘권력이동’ 양상도 자연스런 모습이 됐다. 한 대기업 홍보담당자는 “경기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홍보와 마케팅 비용을 줄이게 된다”며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비용도 대내외 상황이 어려워지니까 그쪽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일상적인 운영비 절감 노력은 상징적 차원이어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날로 악화하는 경영환경 탓에 본격적인 비상경영체제 돌입에 대비하고 있다. 에스케이에너지는 최근 경기상황별로 시나리오를 짜, 인력채용을 줄이거나 투자 우선순위를 변경하는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지에스칼텍스도 올해 발표한 고도화설비 투자 시기를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회사 차원의 비용절감 노력으로 현 경제상황을 넘길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며 “경제상황이 악화하면서 신규채용과 투자 축소는 물론 기존 인력의 감원까지 불가피해질 수도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재명 김재섭 윤영미 기자 miso@hani.co.kr
퇴근 시간이후 전등 자동 OFF
출장 줄이고 행사들 취소 ‘화장실 수도의 수압을 낮춰라’, ‘종이컵은 머그컵으로 대체하라’, ‘외국출장은 최소화하고 비즈니스석은 이코노미석으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상황에 기업들의 비용절감 노력도 필사적이다. 이면지 활용, 점심시간 컴퓨터 모니터 끄기와 같은 기본적인 원가절감 방안은 이제 일상화된 지 오래다. 올 상반기에 초고유가 시대를 맞아 냉방온도를 높이고 직원들의 넥타이를 풀게 했던 기업들이 경제위기에 다시 한번 ‘마른 수건 짜내기’에 나서고 있다. 기업들은 당장 눈에 띄는 비용절감 노력 외에도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대비해 채용·투자 계획 변경 검토도 본격화하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SKT)은 서울 을지로 본사 지하 2층에 있는 직원용 카페의 컵을 최근 종이컵에서 머그컵이나 유리컵으로 바꿨다. 이 카페는 직원이 먹는 음료 값을 회사가 대신 지불해 주는 곳이다. 홍보실 직원은 “테이크아웃용 종이컵을 이용하다 보니 직원들이 음료를 하루에도 몇 잔씩 사무실로 가져간다”며 “환경도 생각하고, 음료 소비량을 줄여 비용도 절감하기 위해 취한 조처”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회사는 화장실 수도의 수압을 낮추는 방식으로 수도 요금도 아끼고 있다. 야근 풍경도 변하고 있다. 지에스칼텍스와 에스케이텔레콤, 신세계 등에선 저녁 8시가 되면 사무실의 전등이 자동으로 꺼진다.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해서다. 야근이 필요한 직원은 따로 사내 전산시스템에 접속해 야근신청을 해야 하고, 전등도 그 자리만 켜준다. 신세계는 전기 사용량이 많은 정수기, 커피 자동판매기 등에 타이머 콘센트를 설치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폐점 뒤 전원을 차단하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올해 약 170만㎾, 모두 1억5천만원의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팍’ 줄인 외국출장이다. 환율 급등으로 외국출장 비용이 불과 한두 달 전보다 1.5배 이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외국전시 행사에 통상 40~50명가량이 참가했는데 최근 30여명으로 줄였다. 에스케이그룹은 28일 글로벌기업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열 계획이던 ‘주요 경영자 세미나’를 국내에서 열도록 바꿨고, 직원들의 외국출장도 30% 이상 줄이기로 했다. 한국아이비엠은 금융위기 이후 외국출장을 줄이는 것은 물론, 본사 차원에서 소집하는 회의도 가급적 전화나 화상회의로 대체했다고 한다. 예정된 연례행사를 취소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경비지출 관행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보통 한해 부서 예산을 조금 부족하게 책정하다 보니 관행적으로 다음해 예산을 미리 끌어와 썼는데, 최근 이를 전면 금지해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일년에 한차례 직원가족을 대상으로 열던 10월 정기음악회를 부랴부랴 취소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연례행사라 문제없이 진행될 줄 알고 준비를 해왔는데 최근 취소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같은 그룹이라도 비용절감의 고통은 비주력 계열사에 더 혹독하다. 대기업 본사에서 일하다 그룹 계열사로 자리를 옮긴 한 임원은 “이달부터 외국출장 때 항공기 좌석을 비즈니스석에서 이코노미석으로 바꾸라는 지침이 내려왔다”며 “본사 임원들은 아직까지 이런 지침을 적용하지 않고 있는데, 원가절감에도 차별을 두고 있는 셈”이라고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 계열사는 최근 팀 운영비도 대폭 삭감당해 직원들 회식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비용절감이 강조되면서 돈줄을 쥐고 있는 재무파트가 평상시보다 발언권이 커지는 사내 ‘권력이동’ 양상도 자연스런 모습이 됐다. 한 대기업 홍보담당자는 “경기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홍보와 마케팅 비용을 줄이게 된다”며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비용도 대내외 상황이 어려워지니까 그쪽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일상적인 운영비 절감 노력은 상징적 차원이어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날로 악화하는 경영환경 탓에 본격적인 비상경영체제 돌입에 대비하고 있다. 에스케이에너지는 최근 경기상황별로 시나리오를 짜, 인력채용을 줄이거나 투자 우선순위를 변경하는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지에스칼텍스도 올해 발표한 고도화설비 투자 시기를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회사 차원의 비용절감 노력으로 현 경제상황을 넘길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며 “경제상황이 악화하면서 신규채용과 투자 축소는 물론 기존 인력의 감원까지 불가피해질 수도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재명 김재섭 윤영미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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