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을 외채는 단기 받을 외화는 장기
중소기업·건설사 대출 비중 높아 손실 악화 우려
중소기업·건설사 대출 비중 높아 손실 악화 우려
국내 은행들의 유동성과 건전성 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국제 금융시장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국내 은행들을 ‘부정적 관찰대상’으로 지정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외부문제다. 즉 국제 금융시장이 경색되면서 국내 은행들이 외화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반면 국내 은행들이 갚아야 할 외채는 속속 만기가 도래하고 있다. 게다가 은행들이 갚아야 할 외채는 만기가 짧은 반면에, 빌려준 외화채권의 만기는 장기여서 외화 유동성의 일시적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에스앤피는 특히 “한국 정부가 아직 은행에 대한 광범위한 지원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근 다른 국가들이 은행간 거래에 대한 무제한 지급보증 등 파격적 조처를 잇달아 발표하는 마당에 한국 정부는 미온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의 은행들은 다 정부 보증을 받는데 한국 은행들만 못 받으면 누가 한국 은행들에 달러를 빌려주겠냐는 의미다.
두번째 문제는 국내 문제다. 국내 은행들이 그동안 중소기업과 건설회사에 대출을 너무 많이 해 줬다는 것이다. 금리상승과 부동산시장 침체 등으로 중소기업과 건설회사 부도가 늘어나면 은행의 손실이 커져 재무 건전성이 갑자기 악화할 수 있다는 경고다.
길기모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우리 은행들을 불안하게 지켜봐 왔다”며 “스탠더드푸어스의 이번 조처는 이미 예상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자들은 15일 현재까지 최근 한 달 간 국내 증시에서 2조9천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는데 이 가운데 4912억원어치가 은행 주식이었다.
국내 채권시장도 마찬가지다. 국고채와 은행채 금리의 차이는 이미 3%포인트에 가까울 정도로 벌어지고 있다. 은행이 발행하는 채권을 사려는 투자자가 없고, 사더라도 금리를 더 많이 얹어줘야 한다. 은행이 단기자금 조달 목적으로 발행하는 91일물 시디(양도성예금증서) 금리 또한 15일 6.06%로 치솟았다. 이는 고시금리일 뿐 실제 이날 채권시장에서 시디 4개월물은 6.68%에 발행됐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가 신용도에 공식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 은행들은 자금 조달 여건은 더욱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한 채권딜러는 “그동안 은행채를 살까 말까 고민해 왔지만 내일부터는 전혀 사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우리금융지주 재무담당 간부는 “앞으로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이 더 커질 판이어서 매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신용경색과 국내 부동산대출 부실 우려라는 두가지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국내 은행의 문제 또한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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