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불공정거래 유형
355개업체 68% “거래중단 우려 감내”
‘판촉사원파견·판촉비전가’ 가장 심각
‘판촉사원파견·판촉비전가’ 가장 심각
# 한 대형마트에 공산품을 납품하는 ㄱ업체 ㄴ사장은 대형마트 신규 점포가 생길 때마다 화가 난다. 신규 점포의 경우 납품업체가 개장일에 맞춰 직접 물품을 들여 놓고 전시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체들과 상품들이 몰리다 보니, 이른 새벽부터 1~2㎞ 정도 줄을 서야 하고, 직접 가지 못할 경우 하루 20여만원의 일당을 줘서 별도로 사람을 써야 한다.
?ㄴ사장은 “인건비와 출장비까지 납품업체에 부담시키는 불합리한 처사”라며 “업체관계자의 참석 여부까지 일일이 확인하는데 약자 입장에서 어쩌겠느냐”고 하소연했다. ㄴ사장은 또 “명절 때면 대형마트 담당 직원으로부터 1000만원 상당의 상품권 구입을 권유받곤 하는데 사실상 강매”라고 말했다.
# ㄷ업체 ㅂ사장은 한 대형마트에 납품을 신청했다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대형마트쪽은 ‘품질인증서’를 받으라고 하면서 100만원의 심사비용까지 부담할 것을 요구했다. 인증내용은 품질과 전혀 상관없는 납품업체의 소화기 비치 여부, 경영방침 등 항목으로 이뤄져 있었다. ㅂ사장은 “반품이나 불량이 있어서 인증을 받으라거나, 물건 품질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이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분개했다.
대형마트의 소매시장 영향력 확대와 최근 경기침체로 대형마트 외에는 마땅한 판로가 없는 중소 납품업체들이 대형마트의 불공정 행위까지 개선되지 않아 이중고를 겪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대형마트와 거래하고 있는 355개의 거래업체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여 24일 내놓은 결과를 보면, 조사업체의 45.9%가 여전히 불공정 거래행위를 겪고 있지만 대다수 업체(68.7%)는 거래중단을 우려해 이를 감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형마트가 납품업체에 강요하고 있는 가장 흔한 유형의 불공정거래행위는 ‘판촉사원 파견 요구·판촉비용 전가’, ‘납품단가 인하 등 부당거래’, ‘추가비용 부담요구’, ‘수수료 인상’ 등의 순이었다.
실제 지난달 대형마트의 수수료율은 매출액 대비 18.9%로 중소 납품업체가 생각하는 적정 수수료율 13.3%보다 5.6%나 높았다. 수수료율이 20% 이상이라고 답한 업체도 49%에 달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과도한 수수료 부담은 대형마트간 과당경쟁이 지속되는 상황이어서 앞으로도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형마트가 좋은 품질의 상품을 싼 가격에 소비자에게 공급하겠다며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자사브랜드(PB) 제품도 납품업체들의 경영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마트가 저가 납품을 요구하다보니, 원가부담을 납품업체가 떠안아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피비제품을 납품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78.8%가 납품가격이 적정하지 못하다고 답했고, 60.6%는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부의 불공정 거래행위 방지대책과 시정조치의 효과에 대해서도 중소기업 55.2%가 부정적 인식을 보였다.
중소기업중앙회 장길호 소상공인지원실장은 “불공정 거래행위가 과거에 비해서는 줄어들고 있지만, 눈에 띠게 개선되지는 않고 있다”며 “제조부문에 공정거래급법과 하도급법이 있듯이 유통거래에서도 공정성을 확보할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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