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후유증 ‘알짜매물’ 쏟아진다
빚 내서 몸집 키운 금호·유진·C&그룹
의욕 과잉에 자금난…계열사 팔기로
의욕 과잉에 자금난…계열사 팔기로
지난 몇년동안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려온 기업들이 결국 계열 기업들을 매물로 시장에 내놓고 있다. 경기가 좋고 금리가 낮을 때는 인수합병 때 짊어진 차입 부담 등을 견딜 수 있었지만, 올해 들어 금리가 치솟고 경기침체가 가속화되자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매물들이 빠른 시일 안에 시장에서 ‘제값’을 받고 팔릴지는 미지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1일 금호생명을 상장 전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경영권까지 포함해 지분 전체를 넘길 수 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금호 쪽은 금호생명을 상장한 뒤 지분 일부만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상장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매각이라는 또 하나의 카드가 생긴 것”이라며 “어떤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지 진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는 2006년 12월 대우건설, 올해 3월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승승장구해 왔지만 지난 7월부터 유동성 위기설에 휩싸였다. 그룹 쪽은 7월 말 금호생명(상장 뒤) 지분매각, 사회기반시설(SOC) 주식 매각, 대한송유관공사 매각 등을 통해 1조1505억원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시장에서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룹 관계자는 “시장에서 비주력 계열사 중에 똘똘한 것을 내놓으라는 주문이 많았다”고 말했다.
공격적 인수·합병으로 커나가던 신생 조선업체 C&그룹도 11일 “자구계획 일환으로 신우조선해양의 매각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C&중공업이 주력사인 C&그룹은 지난해 11월 신우조선해양을 인수했지만 최근 조선업 경기가 하강하면서 결국 다시 내놓은 것이다. C&중공업은 이미 지난달에도 철강사업 부문을 매각했다.
‘인수합병으로 몸집 불리기’의 선두주자였던 유진그룹도 유진투자증권(옛 서울증권)을 재매각하겠다고 10일 발표했다. 유진증권은 올초 매물로 나온 교보증권 인수를 검토하고 최근 대대적인 수수료 인하 광고전까지 펼치는 등 ‘겉’은 멀쩡해보였지만 ‘속’은 그렇지 못했다. 올 초 하이마트를 인수할 때 유진그룹은 무려 1조4천억원을 차입했다. 신용평가기관에서는 유진그룹이 한해에 이자로만 400억원을 쓸 것이라고 추정했다. 더구나 올해 들어 주식시장이 고꾸라지면서 유진투자증권은 지난 분기(4~6월)에 16억원의 적자를 냈다.
지난 5월에는 이랜드그룹이 홈에버를 홈플러스에 재매각했다. 이랜드그룹은 의류사업에서 유통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겠다고 까르푸를 야심차게 인수했지만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짐이 돼버린 것이다.
길기모 굿모닝신한증권 기업분석부 연구위원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시중에 자금이 풍부하고 기업실적이 좋은 신용확장 국면이었지만 올해 들어 축소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며 “빚을 내 인수·합병을 하는 차입매수(LBO) 방식은 확장국면에서 활발해지지만 수축국면에서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논란에 휩싸인 금호, 유진, 이랜드, 두산, STX 등이 대표적인 차입매수(LBO) 기업들”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 매물들이 제대로 팔리겠느냐 하는 것이다. 매물이 나오면 인수경쟁이 붙곤 했던 지난해까지완 달리 지금은 경기침체가 진행될수록 이들 기업들의 몸값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길 연구위원은 “이미 시장은 매수자 우위 시장”이라며 “결국 매각하는 쪽이 눈높이를 낮추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선희 이용인 김진철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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