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원유 수출국의 외환보유액 현황(왼쪽)과 중동 7개 주요 산유국의 원유판매액
건설업계, 중동서 사상최대 수주 잇따라
현대차 판매 35%↑…러시아 공략 강화
현대차 판매 35%↑…러시아 공략 강화
현대차는 지난해 말 중동에 수출하는 그랜저에 글로벌 자동차업체 최초로 아랍어 내비게이션을 장착했다. 이 내비게이션에는 ‘메카’ 버튼도 달려 있어 누르면 메카 지역을 화살표로 알려준다. 이슬람 교도들이 여행 중에도 기도할 방향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내비게이션이 큰 호응을 얻자 현대차는 올해부터 싼타페와 베라크루즈에도 확대 적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1~5월 중동의 현대차 판매실적은 지난해보다 35%가 증가했다.
엘지전자는 지난달 아프리카 지역 최초로 나이지리아 라고스에 2000㎡ 규모의 서비스센터를 설립했다. 또 나이지리아 부족어를 지원하는 텔레비전을 출시하고 모기장과 의족을 지원하는 등 현지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세계 석유매장량의 10%가 묻혀 있는 아프리카의 성장성을 주목한 것이다.
고유가로 세계 경제가 침체 위기를 맡고 있는 가운데서도 콧노래를 부르는 나라들이 있다. 바로 원유가격이 올라갈수록 호주머니가 두둑해지는 산유국들이다. 국내외 시장이 모두 휘청거리는 요즘 같은 때 국내 기업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들 나라들을 공략하는 기업들의 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70년대 1·2차 오일쇼크 때도 국내 건설인력들이 오일머니를 벌어들였던 ‘중동 붐’이 있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오일머니의 규모와 성격이 훨씬 커지고 다변화되고 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산업본부실장은 “70년대에는 산유국들의 투자가 건설 부문에 집중돼 있었다면 지금은 토목, 산업플랜트, 관광·문화, 금융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로서는 그만큼 기회가 많아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오일머니 수혜산업인 건설업계는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고 있다. 현대건설이 지난 5월 사상 최대 규모(20억7천만달러)의 카타르 라스라판 플랜트를 수주한 것을 비롯해, 올해 상반기 전체 국외 수주액이 259억달러로 지난해 대비 61%가 증가했다.
자동차·가전 같은 소비재 시장도 국내 기업들의 집중 공략 대상이다. 세계 자동차시장이 고유가로 크게 위축되고 있지만 러시아 시장은 지난해보다 17%나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러시아 수입차 시장 2위인 현대차는 지난달 상트페테르부르크에 5400억원을 들여 연간 10만대 규모의 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전자업계도 손으로 쓴 아랍어를 인식하는 휴대전화(삼성전자), 티브이를 켰을 때 코란이 나오는 ‘코란 티브이’(대우일렉트로닉스) 등 지역 특화 제품 개발에 여념이 없다. 실제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은 지난 5월 전년보다 3.1% 감소했지만 대중동 수출은 37.8%가 증가해 수출 실적을 떠받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오일머니의 가장 큰 특징은 글로벌 금융시장 진출이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세계화와 금융시장 개방이 진전되면서 오일머니가 세계 주식시장 투자를 시작했고, 국부펀드를 만들어 글로벌 금융기관들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현재 중동 주요 국가의 국부펀드 규모는 1조4830억달러나 된다. 이들은 지난해 말~올해 초 메릴린치·씨티그룹 등의 지분을 사들였다.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올 1~5월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쿠웨이트 등 3개국이 사들인 순매수 규모가 1조6600억원에 이른다. 6월에도 2천억원 가량을 순매수했다. 절대규모 자체가 크진 않지만 외국인들이 상반기에 17조6천억원 가량을 순매도한 것과 비교하면 의미 있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정보파트장은 “영미 자본에서 중동·중국 자본으로 넘어가는 ‘외국인 사이의 선수 교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오일머니의 수혜가 고유가로 입는 피해를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인 것은 물론 아니다. 김학균 팀장은 “국내 기업이나 주식시장이 부분적으로 수혜를 입고 70년대보다 기회도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고유가로 말미암은 국내외 경제 침체와 이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실적 둔화라는 큰 흐름을 바꿀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선희 김영희 이형섭 최종훈 기자 shan@hani.co.kr
하지만 이런 오일머니의 수혜가 고유가로 입는 피해를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인 것은 물론 아니다. 김학균 팀장은 “국내 기업이나 주식시장이 부분적으로 수혜를 입고 70년대보다 기회도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고유가로 말미암은 국내외 경제 침체와 이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실적 둔화라는 큰 흐름을 바꿀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선희 김영희 이형섭 최종훈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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