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경유·등유 유통시장의 구조도
9월부터 ‘주유소 상표표시제’ 폐지
오는 9월1일부터 특정 정유사의 상표를 내건 주유소는 해당 정유사의 제품만을 팔도록 강제하는 이른바 ‘주유소 상표표시제도’(폴사인제)가 폐지된다. 정유사에 견줘 상대적 약자였던 주유소의 협상력을 키워 기름값 인하를 유도해 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실제 기름값을 끌어 내릴 수 있을지, 품질관리는 제대로 될지 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한 주유소서 여러 정유사제품 판매 허용
주유소 “공급가 떨어지면 값 인하” 환영
정유사 “지금도 마진 적은데…효과 의문” ■ 무엇이 바뀌나? 공정거래위원회는 19일 ‘석유제품판매 표시광고 고시’를 폐지하기로 의결했다. 공정위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호하고 정유사간 품질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1992년 이 제도를 도입했지만, 그 목적과 다르게 주유소가 특정 정유사하고만 거래하도록 하는 도구로 이용돼 고시를 유지할 필요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폐지 이유를 밝혔다. 공정위는 또 “지금도 정유사들이 서로 제품을 교환하고 있어, 정유사 상표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보호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고 덧붙였다. 고시 폐지가 의결됐지만 주유소의 상표표시가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지금까지는 ㄱ주유소가 ㄴ정유사 상표를 내걸 경우 ㄴ사의 제품만을 팔도록 정부가 강제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을 했지만, 앞으로는 정부는 간여하지 않고 주유소와 정유사간의 자율적인 계약에 맡겨두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ㄱ주유소가 자신의 제품판매량의 약 80%를 ㄴ정유사로부터 구매하는 조건으로 ㄴ사의 상표를 내걸더라도, 나머지 20% 물량에 대해서는 다른 정유사나 주유소에서 구입해 판매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주유소는 서로 다른 정유사 제품을 교체하거나 혼합해도 이런 사실을 주유소에 표시만 하면 판매에 제약이 없다. ■ 가격인하 효과 있을까? 주유소 업계는 그동안 정유사의 횡포를 이유로 상표표시제 폐지를 요구해왔던 만큼 이번 조처에 대해 환영하고 나섰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고시 폐지로 정유업계의 과점체제가 깨지고 각 주유소가 정유사 상표를 자유롭게 옮길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유사간 가격경쟁이 촉진될 것”이라며 “이는 석유제품의 주유소 공급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결국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유업계는 가격인하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에스케이에너지 관계자는 “유통마진이 근본적으로 적은 상황이어서 가격을 내릴 여지가 거의 없다”며 “오히려 여러 정유사의 제품이 섞이는 과정에서 품질이 나빠지거나, 사고가 났을 경우 책임소재 파악도 힘들다”고 말했다. 지에스칼텍스 관계자도 “카드할인, 마일리지 제도 등 가격 외의 각종 혜택이 줄어들게 되면 실질적인 가격인하 효과는 없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사정들 때문에 상표표시제가 폐지되더라도 당장 주유소들이 지금의 거래관행을 크게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와 유사한 취지로 복수상표표시제도가 2001년 9월 도입됐지만 유명무실화됐던 전례도 있다. 경남 창원의 한 주유소업자는 “보너스카드 사용율이 90%에 이를 정도로 고객들은 상표표시를 보고 우리 주유소를 찾고 있다”며 “여기에 주유기, 세차기와 같은 각종 시설에도 추가 비용이 들텐데 이걸 폐지해서 이득이 될까 모르겠다”며 반대의사를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금도 20% 물량은 정유사간 제품 교환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 정도 선에서 주유소들이 다른 정유사 제품을 구입해 판매에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유사들은 큰 파급효과가 없을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시장환경이 어떻게 바뀌어 나갈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직영주유소 비중을 늘리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당분간은 시장상황을 좀 더 지켜보며 전략을 세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주유소 “공급가 떨어지면 값 인하” 환영
정유사 “지금도 마진 적은데…효과 의문” ■ 무엇이 바뀌나? 공정거래위원회는 19일 ‘석유제품판매 표시광고 고시’를 폐지하기로 의결했다. 공정위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호하고 정유사간 품질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1992년 이 제도를 도입했지만, 그 목적과 다르게 주유소가 특정 정유사하고만 거래하도록 하는 도구로 이용돼 고시를 유지할 필요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폐지 이유를 밝혔다. 공정위는 또 “지금도 정유사들이 서로 제품을 교환하고 있어, 정유사 상표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보호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고 덧붙였다. 고시 폐지가 의결됐지만 주유소의 상표표시가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지금까지는 ㄱ주유소가 ㄴ정유사 상표를 내걸 경우 ㄴ사의 제품만을 팔도록 정부가 강제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을 했지만, 앞으로는 정부는 간여하지 않고 주유소와 정유사간의 자율적인 계약에 맡겨두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ㄱ주유소가 자신의 제품판매량의 약 80%를 ㄴ정유사로부터 구매하는 조건으로 ㄴ사의 상표를 내걸더라도, 나머지 20% 물량에 대해서는 다른 정유사나 주유소에서 구입해 판매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주유소는 서로 다른 정유사 제품을 교체하거나 혼합해도 이런 사실을 주유소에 표시만 하면 판매에 제약이 없다. ■ 가격인하 효과 있을까? 주유소 업계는 그동안 정유사의 횡포를 이유로 상표표시제 폐지를 요구해왔던 만큼 이번 조처에 대해 환영하고 나섰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고시 폐지로 정유업계의 과점체제가 깨지고 각 주유소가 정유사 상표를 자유롭게 옮길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유사간 가격경쟁이 촉진될 것”이라며 “이는 석유제품의 주유소 공급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결국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유업계는 가격인하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에스케이에너지 관계자는 “유통마진이 근본적으로 적은 상황이어서 가격을 내릴 여지가 거의 없다”며 “오히려 여러 정유사의 제품이 섞이는 과정에서 품질이 나빠지거나, 사고가 났을 경우 책임소재 파악도 힘들다”고 말했다. 지에스칼텍스 관계자도 “카드할인, 마일리지 제도 등 가격 외의 각종 혜택이 줄어들게 되면 실질적인 가격인하 효과는 없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사정들 때문에 상표표시제가 폐지되더라도 당장 주유소들이 지금의 거래관행을 크게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와 유사한 취지로 복수상표표시제도가 2001년 9월 도입됐지만 유명무실화됐던 전례도 있다. 경남 창원의 한 주유소업자는 “보너스카드 사용율이 90%에 이를 정도로 고객들은 상표표시를 보고 우리 주유소를 찾고 있다”며 “여기에 주유기, 세차기와 같은 각종 시설에도 추가 비용이 들텐데 이걸 폐지해서 이득이 될까 모르겠다”며 반대의사를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금도 20% 물량은 정유사간 제품 교환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 정도 선에서 주유소들이 다른 정유사 제품을 구입해 판매에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유사들은 큰 파급효과가 없을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시장환경이 어떻게 바뀌어 나갈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직영주유소 비중을 늘리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당분간은 시장상황을 좀 더 지켜보며 전략을 세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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