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미국의 원유 재고가 예상 외로 감소하고 달러화 약세가 계속되면서 배럴당 133달러를 돌파하는 초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 급등세가 지속되면서 국내 휘발유 판매가격이 리터당 2000원대를 넘어서는 주유소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산 원유 7월 인도분 선물가격은 전날에 견줘 배럴당 4.19달러 폭등한 133.1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동산 두바이유 현물 역시 사상 최고치인 배럴당 123.69달러로 하룻만에 3.29달러가 올랐다. 최근 국제유가 오름세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 추세다. 서부텍사스산 원유 선물가격은 올 2월초 배럴당 88달러선이었다. 하지만 같은 달 19일 100달러를 돌파한 뒤 50여일이 지난 4월 9일 110달러선을 돌파했다. 이후 110달러에서 120달러까지 오르는 데 27일이 걸렸고 그 뒤 130달러가 되는 데는 불과 15일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이런 급등세는 전통적으로 유가에 영향을 미치는 수요·공급이나 정치적 상황 같은 합리적 요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의 원유 재고가 감소했다지만 예년에 비해 높은 수준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최근 국제유가를 끌어올리는 주요 원인으로 각종 투자기관들의 비관적 전망을 꼽았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5일 보고서에서 앞으로 6~24개월 내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200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여기에 석유사업에 대한 투자 부진이 계속되고 자원민족주의가 등장하면서 중장기적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불안감도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국제유가 오름세를 두고 ‘패닉 상태’ 혹은 ‘머니 게임’이라며 국제유가 150달러 돌파는 시간문제라고 분석했다. 21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의 2015년 인도분 선물거래 가격이 140달러대로 하룻만에 7~8달러나 오른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구자권 한국석유공사 해외조사팀장은 “과거 20년동안 처음 있는 일”이라며 “유가 수준에 대한 심리적 기대가 엄청나게 올라갔다. 장기적으로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향후 몇달은 이런 오름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22일 한국석유공사의 주유소 종합정보시스템 ‘오피넷’에 공개된 판매가격를 보면, 서울 영등포구의 ㅅ주유소는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25원이었다. 강남구 논현동의 ㅋ주유소와 삼성동의 ㅇ주유소 등 강남지역 7개 주유소가 2천원이 넘는 가격에 휘발유를 판매했다.
경유 가격 역시 강남구 평균 가격이 리터당 1923원으로 하룻만에 51원 상승하며 1900원선을 넘어섰다. 경유의 주유소 공급가격이 휘발유보다 높아져 조만간 경유값도 리터당 2000원을 넘는 주유소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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