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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새 사업·서비스 ‘고객한테 물어봐’

등록 2008-04-24 18:07

에스케이텔레콤의 ‘휴먼센터드 인터페이스그룹’(HCI) 직원들이 한 고객의 무선인터넷 이용행태를 담은 사진들을 벽에 붙여놓고 함께 보며 잠재된 요구를 찾아 아이디어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 제공.
에스케이텔레콤의 ‘휴먼센터드 인터페이스그룹’(HCI) 직원들이 한 고객의 무선인터넷 이용행태를 담은 사진들을 벽에 붙여놓고 함께 보며 잠재된 요구를 찾아 아이디어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 제공.
[고객가치 경영] 통신업계 ‘새 사업 밑천=고객’
HCI팀, 고객들 집·일터 찾아 함께 생활하며 아이템 찾아
채팅과 쇼핑 접목한 ‘채핑’·손전화로 선물 ‘기프트콘’ 개발
■ SKT 새 사업·서비스 ‘고객한테 물어봐’

서울 종로1가에 자리잡은 영풍빌딩 10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맞은편 벽에 ‘Human Centered Interface group(HCI)’이란 영문 이름이 덩그러니 붙어 있다. 보안 장치가 돼 있는 문을 거쳐 들어간 사무실 모습은 더욱 낯설다. 소파나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사람들dl 일하는 모습이 생뚱맞기 그지없다. 그동안 한번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에스케이텔레콤(SKT)의 ‘에이치시아이팀’이다. 신민교 매니저는 “팀원은 20여명 정도 된다”며 “각자 현재 무슨 프로젝트를 맡고 있고, 이전에 어떤 프로젝트를 맡았었는지 극비로 돼 있어 물어도 말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홍보실 백창돈 매니저는 “언론에 공개되기는 <한겨레>가 처음일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새로운 사업이나 상품·서비스 아이템을 발굴하는 조직은 어느 기업에나 있다. 하지만 에스케이텔레콤의 에이치시아이팀은 ‘에이치시아이 방법론’이란 기법을 사용해 신규 사업이나 서비스 아이디어를 기존 고객에게서 찾는다는 점에서 다른 기업 것과 다르다. 실제로 에이치시아이팀의 현장은 기존 에스케이텔레콤 고객의 집이나 일터이다. 온라인 쇼핑을 많이 이용하는 고객, 영상통화를 많이 하는 고객, 무선인터넷을 많이 이용하는 고객, 무선인터넷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 고객, 휴대전화를 엉뚱한 용도로 사용하는 고객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고객들을 발굴해 며칠 함께 생활하며 관찰하거나 한나절 가까운 집중 인터뷰를 통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를 찾아낸다.

“곁에서 고객의 생활 모습을 관찰합니다. 고객의 행태를 관찰하며 ‘왜 저렇게 하지?’ 내지 ‘저 대답의 진짜 의미가 뭘까?’란 질문을 던지고, 고객의 행동에서 그 답을 찾습니다. 인터뷰 때도 ‘뭘 원하냐?’거나 ‘무엇이 불편하냐?’고 묻는 게 아니라 고객의 경험과 느낌 등을 듣습니다.” 유병철 매니저는 “고객 스스로도 내가 뭘 원하는지, 뭐가 불편한지를 알거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객의 이용 행태나 느낌에서 고객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는 요구사항을 찾아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에스케이텔레콤도 에이치시아이팀을 꾸리기 전에는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나 의견을 들어 새 사업이나 서비스를 발굴했다. 하지만 고객들의 반응은 언제나 시큰둥했다. 그래서 뭐가 문제인지를 고민하다 찾아낸 게 전문가가 아니라 고객에게서 아이디어를 찾자는 것이었다.

“한 외국인 인문학자가 인도의 시골마을을 여행하다 여인들이 물동이를 이고 사막 길을 한 시간이나 걸어가 물을 길어 오는 모습을 보고 너무 안쓰러워 중장비를 불러 동네에 우물을 파줬답니다. 그런데 여인들이 반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곁에 우물을 두고도 여전히 한 시간씩 걸어가 물을 길어 오더랍니다. 한 여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우리에겐 물을 길으러 갔다 오는 두 시간이 하루 중 유일하게 시댁과 시부모에게서 벗어나 개인 시간을 갖고 이웃 여인들과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푸는 기회였는데, 당신이 빼앗았다고 하더랍니다.” 유승훈 매니저는 “외국인 인문학자는 고객(여인)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우물을 파주고도 욕을 먹은 셈”이라며 “신규 서비스나 상품을 개발할 때 인문학자의 경험과 같은 사례를 최소화하자는 게 에이치시아이팀이 구성된 이유이자 목표”라고 말했다.

에이치시아이팀이 발굴한 것 가운데 하나가 ‘11번가’를 다른 인터넷쇼핑몰과 차별화시켜 주는 ‘채핑’ 기능이다. 채핑이란 채팅과 쇼핑을 합한 말로,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과 11번가 쇼핑몰에서 만나 채팅을 하며 온라인쇼핑을 하거나, 같은 상품을 사러 11번가 쇼핑몰을 들른 네티즌끼리 채팅을 통해 상품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게 한다. 신 매니저는 “온라인쇼핑을 많이 하는 네티즌의 행태를 4시간 가량 지켜보고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라며 “휴대전화로 상품권을 선물할 수 있게 하는 ‘기프티콘’, 유·무선 인터넷을 통해 인맥관리를 할 수 있게 하는 ‘토씨’ 서비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처럼 고객의 행태를 관찰하거나 고객의 경험과 느낌 속에서 찾은 아이디어는 경쟁업체가 복제할 수 없는 장점을 갖는다. 고객의 행태나 느낌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제 맛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남중수 케이티 사장이 전봇대에 올라 서울 강남·서초지역의 고객들에게 제공되는 광케이블을 점검하고 있다. 케이티 제공
남중수 케이티 사장이 전봇대에 올라 서울 강남·서초지역의 고객들에게 제공되는 광케이블을 점검하고 있다. 케이티 제공

■ 케이티 ‘방문 엔지니어 정보’ 미리 휴대폰으로

2002년 민영화 이후 케이티(KT)는 거대한 몸집의 공기업 틀을 벗고 고객가치 제고를 경영활동의 기반으로 삼는 서비스 혁신을 시도해 왔다. 케이티는 지난해 5월 20여명의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고객가치 혁신센터를 열어, 다양한 고객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고객가치 중심의 신사업을 개발하고 이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고객가치를 높이기 위해 먼저 고객의 불만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였다. 지난해엔 소비자불만 자율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해 고객의 불만 소지를 미리 없애고 신속한 피해구제를 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고객의 불만을 파악한 다음 단계는 고객이 기대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놀라움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올해부터 고객 집을 방문하기 전에 엔지니어의 사진과 이름, 방문시각을 미리 고객 휴대폰으로 보내는 고객안심 서비스를 시작했다. 낮에 홀로 집에 머무는 여성이나 어린이·노약자의 집을 방문할 때는 고객이 느낄 수 있는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여성 엔지니어가 찾아가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청각·언어장애인들에게는 실시간 문자메시지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수도권을 포함한 6대 광역시에서는 야간과 주말에도 고객 요청이 있으면 24시간 개통 서비스와 사후 서비스를 하고 있다.

고객가치 혁신활동을 위한 또하나의 발상 전환은 서비스를 ‘애프터(사후)’에서 ‘비포(사전)’로 옮긴 것이다. 고객 불편사항을 사전에 체크해 고객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회사가 찾아 먼저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해에만 100만여건의 ‘비포’서비스가 이뤄졌는데, 서비스의 실시 전후 메가패스 초고속인터넷 품질을 비교해본 결과, 평균속도가 949Kb 증가하고 고장건수와 고장률이 각각 1287건, 1.3%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

구본권 기자


케이티에프 영상상담센터 상담원이 영상통화를 통해 고객의 얼굴을 보며 상담을 하고 있다. 케이티에프 제공.
케이티에프 영상상담센터 상담원이 영상통화를 통해 고객의 얼굴을 보며 상담을 하고 있다. 케이티에프 제공.

■ 케이티에프 음성인식 ARS·영상상담 ‘감동의 쇼’

케이티에프(KTF)는 ‘굿타임 경영’을 통해 고객가치를 높이고 있다. 굿타임 경영은, 고객이 기대하는 것 이상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고객의 처지에 맞춰 일을 처리하자는 것이다. 케이티에프는 “굿타임 경영은 2003년 시작돼, 케이티에프가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로 ‘쇼’ 바람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케이티에프는 굿타임 경영에 집중하기 위해 내부적으로는 조영주 사장을 ‘고객섬김 전문경영인’(CSO), 임직원은 ‘굿타임 크리에이터’, 고객상담원은 ‘굿타임 서포터’라고 부른다. 모든 임직원이 ‘고객 섬기미’가 되자는 것이다. 업무 처리 절차도 고객 위주로 바꿨다. ‘트러블 티켓’과 ‘음성인식 자동응답 시스템’을 도입한 게 대표적이다. 트러블 티켓이란 고객이 불만을 제기하면 먼저 조처해준 뒤 내부 절차를 밟게 하는 것이다. 고객 쪽에서 보면, 전화 한 통화로 민원이 해결돼 깔끔하다.

지난해 부산지역에 도입해 시범 운영 중인 음성인식 자동응답 시스템은, 기존 자동응답 시스템이 고객에게 주는 불편을 줄여준다. 기존 자동응답 시스템에서 고객이 원하는 답을 들으려면 음성안내에 따라 번호를 여러 번 눌러야 한다. 음성인식 자동응답 시스템은 “요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는지 궁금해서요”라는 식으로 말을 하면, 컴퓨터가 음성을 인식해 상담원을 연결하거나 원하는 답을 들려준다. 케이티에프는 ‘영상상담센터’를 만들어, 영상통화를 통해 고객과 상담원이 얼굴을 마주 보며 상담하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조영주 케이티에프 사장은 “굿타임 경영과 쇼를 결합해 고객의 24시간을 즐겁게 해주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섭 기자


우정사업본부가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우체국 서비스. 인터넷을 통해 우체국쇼핑과 우편업무를 할 수 있고 우편물의 행방을 조회할 수 있다. 우정사업본부 제공
우정사업본부가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우체국 서비스. 인터넷을 통해 우체국쇼핑과 우편업무를 할 수 있고 우편물의 행방을 조회할 수 있다. 우정사업본부 제공

■ 우정사업본부 보상 시스템으로 공공·효율성 다 잡아

우정 서비스는 국가가 민간을 상대로 운영하는 대표적인 공익 우선 서비스이다. 전국 3700여 우체국을 통해서 우편물 집배송, 택배,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식경제부 산하 우정사업본부는 공익성과 효율성 사이의 긴장이 항상 팽팽하다.

우정 사업은 외딴 섬에 부치는 편지도 우표 한 장만 붙어 있으면 정확하게 배달되어야 하는, 국가가 제공하는 ‘보편적 서비스’의 하나다. 그렇다고 효율을 무시한 채 ‘공공성’에만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은 ‘우정사업본부’라는 이름이 말해준다. 일본에서는 비효율적이고 고객 만족도가 낮다는 이유로 우정 분야가 민영화되기도 했다.

우정사업본부가 공공성과 효율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은 고객만족 경영이다. ‘우정사업본부’로 바뀌면서 ‘우체국’ 시절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고객만족 서비스가 등장했다. 고객 불만이 생겼을 경우 보상하는 시스템을 강화했다. 우편물이 손상·분실되면 50만원까지 배상하고, 기준일보다 이틀 이상 늦어지면 우편요금과 수수료를 전액 배상한다. 직원의 불친절한 응대로 2회 이상 우체국을 방문하게 되면 교통비를 내준다. 민간처럼 경쟁 상대가 따로 없는 국영 서비스로는 상당한 ‘파격적 서비스’다.

우정사업본부는 지역간·계층간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인터넷 플라자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으로 2722곳의 우체국 인터넷 플라자에는 모두 3324대의 피시가 개방돼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집배 서비스의 향상을 위해 정보기술을 물류시스템에 적용한 실시간 우편물 배송정보를 제공하는 등 첨단 정보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했다. 이런 노력은 우편물 송달률의 획기적 상승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외부조사기관을 통해 2만2000통의 우편물 송달률을 조사한 결과, 목표치인 95%를 넘어 99.5%의 도달률을 보였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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