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동결 합의 이어 “연구개발 3조원 투자” 선언
“하이닉스 인수 겨냥한 새정부 코드맞추기” 해석
“하이닉스 인수 겨냥한 새정부 코드맞추기” 해석
새 정부 출범 뒤 구본무 엘지그룹 회장의 행보가 부쩍 빨라지고 있다.
엘지그룹은 12일 미래성장 사업 발굴을 위해 올해 연구개발에 3조원을 투자하기로 확정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11% 늘어난 것이다. 연구개발 인력도 1100명을 더 뽑기로 했다. 엘지그룹은 이날 대전 엘지화학 기술연구원에서 구 회장과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이 모두 참석해 ‘연구개발 성과보고회’를 열었다. 구 회장은 이날 행사에서 “연구개발은 엘지가 1등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힘”이라고 강조한 뒤, 11개 계열사에서 개발한 70여 가지 핵심 제품과 기술을 일일이 살펴봤다. 그는 전날 여의도 엘지트윈타워에서 계열사 경영진 300명이 모인 세미나에 참석해 “창조적 파괴를 통한 변화”를 강조했다. 지난해 주력 계열사들이 양호한 성과를 낸 것을 발판으로 공격 경영의 고삐를 조이고 있는 모양새다. 엘지그룹은 구 회장의 공식 행사 참석에 대해 “일찌감치 예정된 일정”이라고 밝혔지만, 평소 조용한 행보를 보여온 그가 이틀 연속 그룹 행사에 참석해 공식 발언을 한 건 이례적이다.
앞서 주력 계열사인 엘지전자는 지난 9일 대기업으론 처음으로 올해 임금을 동결하기로 노조와 합의했다. 사용자 대표인 경총이 ‘대기업 임금동결’을 권고한 직후였다. 경총은 “새로운 노사관계의 전형”이라며 즉각 환영 논평을 냈다.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등을 겨냥한 새 정부와의 ‘코드 맞추기’가 아니냐는 해석이 흘러나오는 까닭이다.
이달 초 전경련 상근 부회장에 또다시 ‘엘지맨’이 영입된 뒤로 ‘전경련과의 화해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구 회장은 외환위기 때 ‘반도체 빅딜’ 과정에서 전경련과 소원해진 뒤 아예 발길을 끊었다. 재계 안에서는 최근 삼성, 현대차, 한화 등 다른 그룹 총수들이 나서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을 들어, 구 회장의 ‘역할론’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삼성이 특검 이후 사실상 그룹 차원의 투자와 경영 계획을 미루고 있어서 엘지의 행보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 측면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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